항목 ID | GC0480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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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慶恒 |
이칭/별칭 | 사상(士常),중구(仲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묘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사상(士常)·중구(仲久)이다. 1601(선조 34)년에 출생하였는데 아버지는 선무랑 이길남(李吉男)이고, 어머니는 도사 정혹(鄭或)의 딸이다. 부인은 이경유(李慶裕)의 딸이며, 임숙영(任叔英)의 문인이다.
[활동 사항]
1618년 소과를 거쳐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성균관 학유로 등용되었으며, 그 뒤 전적에 올랐다. 때마침 붕당(朋黨)이 만연하여 온 세상이 너도나도 휩쓸렸으나, 공은 정직하고 성실한 것을 좋아하여 세속을 따라 덮어놓고 남을 따르며 헤매는 데 뜻을 두지 않았다. 내직으로는 사헌부 감찰, 형조·공조의 좌랑·정랑, 군기시·사복시의 첨정, 종묘서령(宗廟署令)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신계현령(新溪縣令), 예안(禮安)·결성(結城)의 현감(縣監), 영남(嶺南)·북관(北關)의 도사(都事)에 보임되었다. 효심이 깊어 1643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를 슬퍼하다가 이듬해 4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허목(許穆)의 『기언별집(記言別集)』에는 이경항과 그의 부인 묘소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