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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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貞顯王后 |
이칭/별칭 | 자순,화혜,소의흠숙,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慈順和惠昭懿欽淑貞顯王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상배 |
출생 시기/일시 | 1462년 - 정현왕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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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시기/일시 | 1473년 - 정현왕후 숙의에 봉해짐 |
활동 시기/일시 | 1480년 - 정현왕후 왕비로 책봉 |
몰년 시기/일시 | 1530년 8월 22일 - 정현왕후 사망 |
묘소|단소 | 정현왕후 묘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100길 1[삼성동 135-4] |
사당|배향지 | 선릉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100길 1[삼성동 135-4] |
성격 | 왕비 |
성별 | 여 |
본관 | 파평(坡平)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능이 있는 조선 시대 성종의 왕비.
[가계]
정현왕후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신창(新昌) 관아에서 출생하였다. 우의정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딸이다. 윤호는 성종 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던 한명회를 견제할 만한 인물로 부각되었으며, 윤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여러 후궁 가운데서 그의 딸을 왕비로 책봉하였다.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가 된 정현왕후는 1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 진성 대군은 훗날 중종이 되었으며, 딸 신숙 공주는 일찍 죽었다.
[활동 사항]
정현왕후는 1473년(성종 4) 6월 궁궐에 들어가 처음 숙의(淑儀)에 봉해졌고, 1479년(성종 10) 6월 연산군의 생모인 왕비 윤씨가 폐위되자 1480년 11월 왕비로 책봉되었다. 폐비 윤씨가 투기를 하다가 쫒겨나는 장면을 본 정현왕후는 성종에게 온화한 성품을 보여주었고, 원자인 연산군(燕山君)을 친아들처럼 키웠다. 이에 성종이 “투기하지 않는 사람이 드문데 다행히 어진 왕비를 얻어 마음이 평안하다”고 할 정도였다.
1497년(연산군 3)에 자순(慈順), 1504년에 화혜(和惠)라 존호되었다. 휘호(徽號)는 소의 흠숙(昭懿欽淑)이다. 1530년(중종 25) 8월 69세로 경복궁에서 승하하였다.
[묘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100길 1[삼성동 135-4]에 정현왕후의 능인 선릉이 있다. 선릉의 왼쪽 언덕에는 정현왕후의 능, 오른쪽 언덕에는 성종의 능이 배치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정현왕후의 시호는 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慈順和惠昭懿欽淑貞顯王后)이다. 시법(諡法)에 “원대한 생각을 잘 성취시키는 것이 정(貞)이고, 행적이 중외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 현(顯)이다.” 라고 풀이하여 지었다. 능호는 선릉(宣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