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499 |
---|---|
한자 | 金武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신라 진흥왕 때 서울특별시 강남구를 포함한 한강 유역 일대를 관할하였던 신주의 초대 군주를 지낸 장군.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19년(532)조에 “금관국의 임금 구해(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인 장남 노종(奴宗), 중남 무덕(武德), 계남(季男) 무력(武力)과 함께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하였다. 구형왕은 구충왕(仇衝王) 또는 구해왕으로 불렸으므로, 김무력은 그의 셋째 아들이다. 김무력의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진평왕 때 대량주 도독(大梁州 都督)을 역임하였고, 손녀인 김문희(金文姬)는 태종 무열왕의 비가 되었으며, 손자 김유신은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을 보필하여 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532년(법흥왕 19) 금관가야가 신라에 병합되자 김무력의 가족들은 신라에 투항하였다. 진흥왕이 백제 성왕과 연합하여 당시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다시 백제의 점령지까지 탈취하여 한성(漢城)을 차지하였다. 이때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참전한 김무력은 크게 공을 세웠다. 553년(진흥왕 14) 7월 신라는 한성에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초대 군주(軍主)로 김무력을 임명하였다. 한강 유역을 빼앗긴 백제 성왕은 554년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관산성(管山城)[지금의 沃川]을 공격하였다. 이때 김무력은 신주의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여 성왕을 전사시키고, 백제의 좌평 4명과 사졸 2만 9600명을 전멸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이러한 군사적인 활약으로 관등이 각간(角干)에 이르렀으며, 568년(진흥왕 29)에는 최고위층으로 부각되어 진흥왕의 순수(巡狩)에도 함께 참여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경내 영축산 자락에 김무력 장군과 배씨 부인의 묘가 있으며, 재실 앞에는 1987년에 세운 기념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