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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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成里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나각순 |
현 소재지 | 삼성리 산성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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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백제 시대 산성.
[개설]
삼성리 산성은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의 산허리를 둘러싼 삼국 시대의 테뫼식 토성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지형 조건으로 볼 때 광진구에서 영동대교를 건너 왼쪽으로 봉은사 가는 방향에 위치하였으며, 한강과 탄천이 합류되는 요충지에 위치한 낮은 산세를 이용하여 축조된 테뫼식 토성으로 보인다.
[건립 경위]
산성의 위치와 지형 조건으로 보아 한강 나루를 지키는 백제 수비성의 하나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위치]
삼성리 산성은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해발 75m]의 산허리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 유적은 경기 고등학교 자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남쪽 기슭 삼성동 73에는 봉은사가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지형조건으로 볼 때 광진구에서 영동대교를 건너 왼쪽으로 봉은사 가는 방향에 위치하였으며, 한강과 탄천이 합류하는 요충지에 해당된다.
[형태]
수도산의 낮은 산세의 허리를 둘러싸고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보인다.
[현황]
한강에 면한 북벽은 가장 지대가 높은 곳으로 한강을 조망하는데 가장 좋은 곳이다. 현재는 자연 구릉과 성벽 외면을 깎아내어 몹시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이곳에 형성된 평지에 아파트 등 주택가와 이면도로를 개발한 상태지만, 성벽은 상당 부분 원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봉은사로 이어지는 남쪽 벽은 일부 구간이 축대조성 등으로 원 모습을 잃었지만 원상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어 고대 백제 문화층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일대에서는 약간의 유물이 수습되었는데, 조선 시대 기와·백자와 고려 도기 등이고, 통일 신라 시대 이전의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1942년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성지(城址)가 언주면 삼성리 봉은사 동북쪽에 있다. 연장 길이는 170간(間)으로 높이 약 1간의 토루(土壘)가 산복(山腹)을 에워싸고 한강에 임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발굴조사와 체계적인 지표조사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이곳에 경기 고등학교가 이전해 오면서 성곽이 자취도 없이 거의 모두 없어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2002년과 2003년의 서울특별시 성곽조사에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였다. 성곽 내부는 학교 교사와 운동장 등이 마련되면서 문화층이 대부분 없어진 것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학교 건물이 성곽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 내부에 들어선 것으로 보고, 성벽은 원상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었다.
현재 삼성리 산성의 흔적으로 인정하고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그 유구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경기 고등학교 남쪽 기슭으로 봉은사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과 학교 북쪽 울타리 지역의 경사지이다. 학교 정문 주변인 동벽과 후문 주변인 서벽은 훼손이 심하여 원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특히 동벽으로 연결되는 지점으로 볼 수 있는 곳에 교내 순환도로가 개설되고, 울타리 밖에 영동대로가 개설되면서 인위적인 성토와 삭토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영동대로를 건너 주택가로 이어져 있는 한강변 비탈도 토성이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그 산세에 따라 성곽의 흔적을 조사하여야 한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동벽은 길고 서벽은 짧은 것으로 보인다.
강남개발에 따라 수도산 정상과 산기슭에 도로와 아파트 등 도시 시설이 건설되고 자연지세가 훼손되어 현재는 토성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 토성이 파괴되기 전에는 단(段)을 가진 축성 형태가 명확하게 산허리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정상부에는 수많은 고려 시대 기와편과 장대석(長臺石)이 흩어져 있었다.
[의의와 평가]
위치와 지형 조건으로 보아 한강 나루를 지키는 백제 수비성의 하나로 추정되며 백제 관방체제와 관련한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