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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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麗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이우태 |
[정의]
936년 후백제 멸망 이후부터 1392년 조선 건국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역사.
[개설]
강남구 지역은 후삼국 시대 한산주(漢山州) 또는 한주(漢州) 지역으로 궁예의 태봉에 속하였다가 왕건의 고려에 귀속되었다. 고려 시대의 서울은 한강 이북 지역은 주로 양주(楊洲)에, 한강 이남 지역은 주로 광주(廣州)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행정구역의 변천]
강남구 지역이 속해 있던 한주는 940년(태조 23)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의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광주(廣州)로 바뀌게 되었다.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에 광주목(廣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이때의 12목은 광주를 비롯하여 양주·충주·청주·공주·진주·상주·전주·나주·승주·해주·황주였다. 995년(성종 14) 12주 절도사를 둘 때는 봉국군절도사(奉國軍節度使)로 고쳐 관내도(關內道)에 소속시켰다가, 1012년(현종 3)에 절도사를 폐하여 안무사(按撫使)를 두었다. 관내도(關內道)는 당의 제도를 본받아 10도제를 시행하면서 설치된 행정구역이나 그 실상은 명확하지 않다.
1018년(현종 9)에 12목을 줄여 8목으로 고칠 때 다시 광주목으로 복원되었다. 이때 전국을 5도 양계로 나누었는데, 광주는 양광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양광도는 도내의 중심 지역인 양주(楊州)와 광주(廣州)의 첫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지금의 경기도 남부지역과 강원도 일부, 그리고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대부분 지역을 관할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교통]
고려 시대에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525개의 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22개의 도(道)를 설치하였는데, 광주도(廣州道)는 그 중의 하나로 현재의 강남구청을 지나는 개경에서 광주 방면에 이르는 역들을 관리하였다.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광주로 피신 도중 두 왕후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는 요탄역(饒呑驛)도 광주도의 관할 구역일 것이다.
[인물]
고려 초의 광주 지방의 유력 호족으로 왕규(王規)가 있다. 그는 광주(廣州) 출신으로 고려 태조를 섬겨 벼슬이 대광(大匡)에 이르렀으며, 두 딸은 태조 왕건의 제15, 16비가 되었는데 그 중 제16비의 아들이 광주원군(廣州院君)이었다. 왕규는 태조 사후에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을 왕위에 앉히고자 반란을 꾀하다가 결국 숙청이 되고 말았는데, 강남구 지역도 그의 세력판도 안에 들어있던 지역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