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2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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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冶匠 |
영어의미역 | Smith |
이칭/별칭 | 대장장이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충인동 25[충인8길 23-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유봉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쇠를 이용하여 각종 연장을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
[개설]
대장간은 쇠를 달구어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으로 무딘 농기구나 기타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벼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내기도 하던 곳이다. 대장간에서 철제품을 만드는 장인을 야장(冶匠)이라고 하며 흔히 대장장이로 불린다.
충주는 전국에서 주요 철산지 중의 한 곳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충주목 토산(土産)에 ‘철장재주남미흘금중품(鐵場在州南未訖金中品)’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이 고려시대의 다인철소(多仁鐵所)로서 지금의 충주시 대소원면 지역이다. 최근 대소원면 지역 지표 조사에서 40여 곳의 야철지가 확인·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충주에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는 야장이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변천]
삼국시대에 사회적으로 중요한 철기를 생산할 수 있었던 기술자는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신라의 탈해가 호공(瓠公)의 땅을 빼앗기 위해 몰래 숫돌과 목탄을 파묻어 놓고 자신이 본래 야장이었음을 주장하며 사취하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런 연유로 삼국시대 지배자들은 자신의 무덤에 막대한 양의 철기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철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집게와 망치를 부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삼국통일기에 와서는 야장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고 있었다. 문장가로 이름 높았던 강수(强首)는 젊었을 때 부곡(釜谷) 야장의 딸과 사통하여 정이 깊었으나 부모는 미천한 자와 혼인할 수 없다고 반대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 야장은 천한 신분의 수공업자로서 관청에 등록하여 국가를 위해 일정한 의무 일수(日數)에 따라 노동을 하여 제품을 만들었다.
『경국대전』공전(工典) 철장조(鐵場條)를 보면, 여러 고을의 철이 나는 곳에 야장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장부를 만들어 공조와 해당 도(道) 그리고 고을에 비치하여 농한기에 쇠를 만들어 올리도록 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관청에 등록하는 제도가 사라져 국가의 속박에서 일정 정도 자유로워 졌다.
[제작 과정]
흙으로 쌓아올린 재래식 화덕의 화구에 숯불을 넣고 풀무질을 하여 불의 온도를 높이고 제품을 만들 쇳덩이를 불에 충분히 달군다. 집게로 쇳덩이를 집고 철제품을 모루에 올려놓으면 양쪽에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쇠메로 메질을 한다. 야장은 집게로 벌건 쇳덩이를 잡고 메질에 맞추어서 형태를 만들어 가고 중간 중간 물에 집어넣어 급격히 식히는 담금질을 하면서 메질과 담금질 그리고 벼름질을 반복하면서 제품을 만든다.
현재 야장은 주문 제작과 수선 제작을 함께 하고 있으며 생산 품목은 농기구로서 도끼·호미·낫·쇠스랑·괭이 등을, 건축재로는 문고리·문손잡이·망치 그외에 연탄집게·칼 등 다양한 철제품을 만들고 있다.
[주요 야장]
1. 김명일 야장
김명일(金明一)은 어려서부터 부친이 우마차 바퀴 테두리 공장을 운영할 때부터 쇠부리를 익히다가 15세부터 대장간에 취업하여 대장 기술을 전수받았으며, 2003년 10월에 보은의 설용술(薛溶述)과 함께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47년째 야장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전수자로는 2명이 있다. 김명일은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후 충주세계무술축제·목계별신제 등의 행사에 참여하는 등 야장 기술에 대한 시연과 홍보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장간은 옛날부터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농기구·연장 및 생활 도구 등을 만드는 곳이었지만 현대화에 밀려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충주에도 여러 곳에서 야장 활동이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크며, 특히 중국산 제품이 들어오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재래식 화덕과 풀무를 사용하면서 전통적인 대장 기술로 철제품을 만들어내는 대장 기술은 보존 가치가 높으며 지속적으로 전수시켜야 할 우리의 전통 공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