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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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佳新里冶鐵址 |
영어의미역 | Iron-smelting Site in Gasin-ri |
이칭/별칭 | 신흥동 야철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신흥동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길경택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신흥동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개설]
충주는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광맥이 발달하여 양질의 철광이 많은 곳이다. 일찍부터 제철과 관련된 유적과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충주 탄금대에서는 백제시대의 제련로가 확인되었으며, 백제 때 축성된 탄금대 토성에서도 철 교역의 자료인 철정 40매가 출토되었다. 또한 『삼국사기』에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활약한 대문장가 강수(强首)가 충주의 대장간 집 딸과 결혼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등 충주는 제철과 관련된 일화가 많은 곳이다.
[위치]
가신리 야철지는 두 곳이 확인되었다. 신흥동 야철지1로 불리는 곳은 신흥동마을 뒤쪽인 동쪽 야산의 서남사면으로 오목골의 논과 밭이 형성되어 있는 경계 지점에 위치한다. 신흥동 야철지2로 불리는 곳은 신흥동마을을 흐르는 개천 건너 거먹골 초입인 490번지 집터 주변에 위치한다. 밤나무가 심어 야산의 구릉지 사면과 아래쪽 밭 일대이다.
[출토유물]
신흥동 야철지1에서는 쇠똥과 노벽편만이 확인되나, 신흥동 야철지2에서는 쇠똥과 노벽편과 더불어 철광석이 확인된다. 두 곳 모두 제련로에서 쇠를 추출하고 나온 유출재의 퇴적물이 크게 더미를 이루고 있다. 철광석을 채광한 곳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철광석의 존재만으로도 제철 작업이 광범위하게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쇠똥은 크기가 20㎝ 이상 되는 큰 것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대규모 제련이 행해진 증거가 된다. 두 곳 모두에서 노벽편이 다수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제련 작업 후 용광로는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쇠똥의 양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 산을 이룰 정도였으나, 시멘트 공장에서 쇠똥을 파서 기차로 싣고 갔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현황]
야철지가 있는 논에는 붉은 녹물이 넓게 확인되며, 밭에는 쇠똥이 넓게 퇴적되어 고추를 제외한 다른 작물은 잘 자라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가신리 야철지는 노은면에서 확인된 10여 곳의 야철지 가운데 하나로 비교적 쇠똥이 대형이고 그 양도 많은 곳이다. 정식으로 학술 조사가 실시된다면 우리나라 전통 제철 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유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