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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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坪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
[장승제]
들말에서는 정월 보름 아침, 장승이 서 있던 두 곳에서 마을의 태평을 위해 장승제를 지냈다. 장승제는 197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장승은 마을 안과 밖 두 곳에 서 있었다. 한 곳은 들 복판 통샘이 있었던 곳이고, 다른 한 곳은 마을 아래쪽 입구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 옆이다. 아카시아 나무 옆 장승터는 주민들의 쉼터로 사용하고 있다.
제의 순서는 들판에 있던 장승에서 먼저 제를 지내고 마을 안에 있던 장승에 제를 올렸다. 장승은 썩었을 때만 교체한다. 금줄은 장승, 제주 집, 소염 집에 3~4일 전에 친다. 황토는 장승 앞에만 제사 지내기 전 뿌렸다.
장승제는 이장이 주관했으며, 마을 소염이 음식을 장만했다. 예전에는 제주를 마을의 연장자 중 깨끗한 사람으로 가려 2명을 선출하였다. 제주로 선정되면 목욕재계하고 금연, 금주, 금색(禁色)한다. 제수(祭需)는 백설기 한 시루, 북어, 삼색실과 술 등이다. 마련된 제수를 진설한 다음 축을 읽고 유교식 절차에 맞춰 제를 올린다. 소지(燒紙)는 동네 소지를 먼저 올리고 호당 소지를 올린다. 제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음복을 하면서 풍장을 치고 마을 잔치가 시작되었다. 장승제에서 지낸 떡을 먹으면 일 년 재수가 좋고 복을 받는다고 하여 한 조각씩이라도 모두 나누어 먹었다.
[서낭당]
청주시내에서 평동 들말마을로 들어오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삼거리의 서쪽은 신성동 가는 길이다. 서낭당은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 한 주가 서 있었고, 그 옆으로 1m 50㎝ 높이의 원형 돌탑이 있었다. 이 길을 지나가는 행인은 모두 이 돌탑에 돌을 던져 쌓으며 비손했다.
동네 시내버스가 들어온 1980년대 초에 길을 넓히면서 돌탑이 소실되었고, 아카시아 나무는 동네 주민이 베어다가 땔감으로 사용하였다.
서낭당은 개인적으로 비손을 하는 장소였다.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나 큰 일을 앞두고 있을 때, 밤에 떡과 북어포, 물을 짚 위에 차려 놓고 빌었다. 주로 평동 주민이 비손하던 장소이다.
[통샘 고사]
100여 년 전에는 들말에 우물이 하나밖에 없었다. 일제시대 후에는 웃말 한 개, 아랫말 세 개가 있었다.
통샘은 들판 가운데 있던 샘으로 여름에 차갑고 겨울에 따뜻했고 수량이 늘 일정했다. 마을 주민 거의가 모두 이 물을 먹고 살았다. 현재는 경지정리를 해 소실된 상태이다.
통샘 고사는 개별적으로 지냈는데 들말 마을에서 선대할머니가 유독 잘 위하셨다. 대개 용왕제는 미역과 쌀, 떡을 차려 놓고 촛불을 켜놓고 밤에 남몰래 지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