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5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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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表忠祠移建事實碑 |
영어음역 | Pyochungsa Igeon Sasilbi |
영어의미역 | Pyochungsa Monument with Historic Recor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87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신호철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표충사(表忠祠)의 이건 내력을 기록한 비석.
[건립경위]
1731년(영조 7)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북문 안에 표충사(表忠祠)를 1939년 도시계획에 밀려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그와 관련된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위치]
상당구 수동 표충사(表忠祠) 안 내삼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쪽 바깥 정원에 있다.
[형태]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30㎝, 폭 43㎝, 두께 21㎝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表忠祠移建事實碑(표충사이건사실비)”이며, 비문은 팔계(八溪) 변영인(卞榮寅)이 짓고 썼다. 금석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표충사(表忠祠)는 원래 청주성 북쪽 희치첩 초루 근처에 건립하였던 것인데, 성이 훼손되고 민가가 모여들면서 제사를 올림에 어려움이 있어 이건하고자 함이 오래되었다. 기묘년 여름에 비로소 와우산(臥牛山) 아래 덕촌 옆에 자리를 잡아 일을 시작한지 9개월 만에 준공을 보게 되었다. 이 일을 함에 있어서 땅을 헌납한 사람은 원장 민영은(閔泳殷)이고, 일을 지휘한 사람은 군수 이해용(李海用)이며, 그밖에 전유사 송태헌, 이영회, 임기수, 한요현 등이 힘써 일을 도왔다. 이건비를 만든 사람은 김원근(金元根)[1886~196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