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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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八景 |
영어음역 | Cheongju palgyeong |
영어의미역 | Eight Scenic Views of Cheongju |
이칭/별칭 | 서원팔경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집필자 | 차용걸 |
[정의]
충청북도 청주의 여덟 군데의 명승지.
[명칭유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청주의 형승(形勝)은 동남쪽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땅이 넓고, 인구가 조밀하며, 물이 공(功)자처럼 돌고, 현사(懸寺)가 강에 닿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원팔경이라 하여 1경은 상당귀운(上黨歸雲: 상당산성에 둘러싸인 구름), 2경은 금천어화(金川漁火: 무심천(無心川) 고기 잡는 불빛), 3경은 선루제월(仙樓霽月: 망선루의 구름 없는 달), 4경은 봉림조하(鳳林朝霞: 봉명 숲의 아침놀), 5경은 석교석구(石橋石狗: 남석교의 돌로 만든 개), 6경은 동장철학(銅檣鐵鶴: 용두사지(龍頭寺址)의 우뚝한 당간), 7경은 우산목적(牛山牧笛: 목동의 피리소리), 8경은 낙가석조(洛伽夕照: 낙가산의 저녁놀)이라 하였다.
서원팔경의 유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아마도 다른 지역을 본떠 서원팔경을 지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황]
1경인 상당산성은 현재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산성으로 삼국시대 축성하였으나 무너진 것을 1716년(숙종 42)에 옛날의 성터에 따라 개축한 성이다.
2경인 금천은 현재 청주의 중심을 흐르는 무심천(無心川)으로 원래 대교천이라 하였으며, 근원은 문의 적현에서 나와 작천(鵲川)으로 흘러가는 하천을 말한다.
3경 망선루는 고려조의 유일한 목조 건조물로 청주 객관의 동쪽에 있어 취경루(聚景樓)라 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 때 공민왕(恭愍王)이 피난하였던 안동에서 이곳에 옮겨와 수개월 동안 머물렀으며, 과거를 시행하고 방(榜)을 이 누에 걸었다. 누각은 오랫동안 헐려있었는데 1461년(세조 7) 청주목사 이백상(李伯常)이 새로 중수하니 한명회(韓明澮)가 누각의 현액을 고쳐 망선루(望仙樓)라 하였다.
4경 봉림(鳳林)은 원래 북수(北藪)로 봉평이라 불렀으나 효종이 등극하기 전 봉림대군 시절에 지은 것이라 한다. 청주의 읍터를 지키려고 나무를 기른 것이다.
5경 남석교는 부강가도에 놓여진 돌다리로 현재는 매몰되었다. 이 다리는 화강암 2층으로 한국식 대청마루 놓듯 돌의 널판을 장방형으로 만들어 양편에 이어 놓았고, 석교 교안 양면에 높이 160㎝의 사각형 석주 위에 개모양(남석교 석조견상)을 조각하였는데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6경인 구리돗대(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는 청주읍성 안 용두사에 있는 것으로 절은 폐사되었지만 구리돗대는 남아 있으며 높이가 10여 길이다. 민간에 전하기를 처음 청주에 설치할 때에 술자(術子)의 말에 따라 이것을 세워 배가 가는 형국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했다고 전한다.
7경은 현재 청주의 중심에 위치한 청주를 대표하는 우암산(牛岩山)[338m]으로 상령산에서 내려와 청주 향교의 주맥이 되었으며 과거에는 석재가 많이 생산되었다. 8경인 낙가산은 것대산(484.0m)에서 내려와 보살사의 주맥이 되는 산으로 풍광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