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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면적이 231만 2422㎡로 목천읍에서 열네 번째 넓은 지역이다. 목천읍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7㎞ 지점에 위치하며, 국도 21호선에서는 북쪽으로 약 2㎞ 거리에 있다. 천덕선이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된 마을 중 교항리의 ‘교’ 자와 승천리의 ‘천’ 자를 따 교천리라 하였다.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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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교촌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목천군 읍내면 용연리, 후평리, 신기리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교촌리로 합병되어 목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교촌리가 되었으며, 이후 본 마을 이름 찾기 일환으로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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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고려 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김취려(金就礪)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 좌승지(贈左承旨) 김응상(金應祥), 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정립(金挺立)이다. 아버지는 사산 감역관(四山監役官) 김절(金晢)이며, 어머니는 도정(都正)을 지낸 유덕신(柳德新)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부인은 감사(監司)를 지낸 홍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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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무인이자 의병. 김진희(金晉熙)는 천안 출신으로,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웠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겸숙(兼叔)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판을 지낸 김이환(金李桓)이며, 우의정을 지낸 갑봉(甲峯) 김우항(金宇杭)의 조카이다. 김진희는 어려서부터 기운이 장사였고 담력이 있어 고을 사람들이 장수의 재목이라고 했다. 청주 상당성 아래에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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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김치룡(金致龍)[1654~1724]은 천안 목천 출신으로, 성품이 단아하고 서(書)·사(史)에 몰두하였으며 일처리에 민첩하였다.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천용(天用)이다. 아버지는 문경 현감을 지낸 김남갑(金南甲), 어머니는 감사(監司)를 지낸 홍득일(洪得一)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출생지는 직산인 것으로 추정되며, 목천면에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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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남공철(南公轍)[1760~1840]은 조선 후기 정조와 순조, 헌종 등 3대에 걸쳐 왕을 보좌한 학자 겸 정치가, 문장가이다. 1778년(정조 2) 정조가 아버지 남유용의 시문을 모아 간행할 때, 남공철이 직접 왕명을 받아 이를 수행하였다. 1824년에 목천이 승지(勝地)이고 선비들이 많아 후진을 양성할 만한 곳으로 인식하여 동헌 가까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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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는 목천군의 서면 지역이었으며, 현재는 목천읍 관할이며 독립 기념관이 있다. 1914년에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북동과 남동이 병합하여 남화리라 하였다. 옛날에는 목천의 남쪽의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남벌이라 했다. 목천군 읍내면 지역으로, 1914년에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남화리로 개설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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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덕회산(德會山) 밑에 좋은 밭이 있다고 하여 덕전리(德田里)라 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충청도 목천군 읍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신흥리, 유왕동, 점말, 중리, 장흥동, 용소말, 심평 마점를 병합하여 덕전리라 하고, 목천면의 관할에 두었다. 신흥동은 폐동되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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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덕전 2리에서 매년 정초에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덕전리 유왕골 산신제는 본래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모시던 것을 정월 초로 날짜를 옮기었다. 이를 위하여 설을 쇠고 나면 마을의 유지들이 모여 제삿날을 정한다. 이 자리에서 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을 대상으로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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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도전리의 ‘도’ 자와 장평리의 ‘장’ 자를 따서 도장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충청도 목천군 서면 지역으로 관동, 진지리, 신기리, 장평리, 도전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장리라 하고 목천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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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마을의 운영과 대소사를 주관할 목적으로 행정리 또는 자연 마을 단위로 결성된 자치 조직. 천안 지역에서 동계는 대동계(大同契)·대동회(大同會)·마을회 등으로 불린다. 자연 마을이나 행정리 단위로 조직되는 것이 보편적이며, 마을의 제반 대소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최고의 조직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몇 개의 마을을 하나로 아우르는 대동계를 조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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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석오 이동녕이 출생하였고, 위당 정인보가 잠시 기거하면서 공부를 하던 마을이다. 이 마을은 전설에 배의 형국이라서 이곳에 이사를 와 부자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풍수 비보 사상에서 배에 돛대가 필요로 해서 동네 가운데에 돛에 해당하는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은행나무가 이동녕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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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한 마을 중 동리의 ‘동’ 자와 장군평의 ‘평’ 자를 따 동평리라고 하였다. 목천군 읍내면의 장군평, 샘모랭이, 중모리, 동리의 일부를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하여 동평리라 하고, 목천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동평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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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모내기를 마친 논에 공동으로 김매기를 하려고 조직된 마을 단위의 노동 조직. 두레는 조선 후기 이앙법의 보급과 더불어 확산된 공동 노동 조직이다. 천안 지역에서는 지난날 주로 자연 마을 단위로 두레를 구성하여 공동으로 김매기를 했다. 그리하여 모내기를 마친 뒤 30일 남짓 지나면 마을별로 회의를 열고 두레의 임원과 품삯, 작업 순서 등을 결정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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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두레의 김매기를 마치고 칠석 무렵에 품값을 결산하며 함께 벌이는 마을 잔치. 두레를 조직하여 논을 매던 1970년대 이전에는 김매기를 마치면 칠월 칠석이나 혹은 백중 무렵에 날을 잡아 두레를 총결산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를 “두레 먹는다.”라고 한다. 두레 먹이는 두레를 구성한 마을 단위로 이루어졌다. 이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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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두레를 조직해 김매기를 할 때 두 마을 사이에서 벌어지는 농기싸움. 예전에는 김매기 철이 오면 마을마다 두레를 조직하여 김매기를 했다. 이때 이웃한 두 마을의 두레패가 농기를 들고 이동을 하다가 마주치면 서로 먼저 인사를 하라고 시비를 벌이다가 두레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천안 지역에서는 기싸움(旗싸움), 깃대 싸움이라고도 한다. 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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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에 속한 법정읍. 목천은 군(郡)으로서 오랜 역사를 전개해오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폐군되어 면명(面名)이 된 것이다. 따라서 목천의 지명 유래는 고을 이름에서 찾아야 한다. 1968년에 목천 향교 전 전교 김붕수에 의해 증보 편찬된 『대록지(大麓誌)』 서문에 목천의 지명 유래가 명시되어 있다. “육면(六面)의 물이 다섯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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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서리에 있는 목천읍 관할 행정 기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를 구성하고 있는 17개 읍·면·동 가운데 목천읍 주민의 생활과 관련한 행정 업무 및 목천읍의 문화·산업 발전을 관장하는 행정 기관이다. 목천읍사무소는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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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문신. 박자응(朴自凝)[1589~1645]은 광해군 재위 시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나, 인조반정 후에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진도로 이배되었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정길(正吉), 호는 읍백당(挹白堂)이다. 영의정 박승종(朴承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사원(金士元)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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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삼층리의 ‘삼’ 자와 신성리의 ‘성’ 자를 따서 삼성리라 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목천군 서면 지역으로 삼층리, 도리티리, 신성리, 산곡리 일부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삼성리로 병합되어 목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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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목천(木川)이다.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범허재(泛虛齋)·향일당(嚮日堂), 시호는 성안(成安)이다. 찰방(察訪) 상보(尙甫)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연안 김씨(延安金氏)로 박사(博士) 김휘(金徽)의 딸이다. 상진(尙震)[1493~1564]은 조실부모하여 큰누이의 집에서 자랐는데, 매부는 하산군(夏山君) 성몽정(成夢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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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목천군 읍내면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리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때 목천군 읍내면 서지리, 서당리, 중보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리라 하고, 천안군 목천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서리가 되었으며, 이후 본 마을 이름 찾기 일환으로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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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쪽은 산이고 서쪽은 들이므로 서쪽으로 마을이 발전해야 흥한다고 하여 서흥리라 하였다 한다.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서흥리는 목천군 읍내면 일덕지리·이덕지리·와룡리·상림리·동막리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되어 이루어진 마을로, 목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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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냇물이 돌 사이로 맑게 흘러내려 간다고 하여 석천(石川)이라 하였다 한다. 목천군 읍내면 사기점리, 먹방이, 산방리 일부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석천리로 병합되어, 목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석천리가 되었으며, 이후 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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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에 속한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목천군 서면 소사리의 지명을 따서 소사리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목천군 서면 소사리, 신곡리 일부, 도전리 일부, 천안군 소동면 소시리, 연기군 전의면 역리 일부를 병합하여 소사리라 하고, 목천읍에 편입하였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소사리가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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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소나무가 많아 송전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예전의 목천군 읍내면 신대리, 서덕리, 만일동, 산방리 장성거리 등이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전리로 병합되어 목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송전리가 되었으며, 이후 본 마을 이름 찾기 일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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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목천읍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3.1㎞ 지점에 위치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된 마을 중 신흥리의 ‘신’ 자와 농계리의 ‘계’ 자를 따서 신계리라고 하였다. 목천군 서면 신흥리, 농계리, 주막거리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계리로 통합되어 목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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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군망(君望), 호는 시북(市北) 또는 자시자(自是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여경(安汝敬), 할아버지는 덕흥 대원군의 사위이며 선조의 매부인 광양군(廣陽君) 안황(安滉), 외할아버지는 최철강(崔鐵剛)이다. 아버지는 사간원 정언을 지낸 안응원(安應元)이고, 한성부 좌윤을 지낸 안응형(安應亨)이 숙부이다. 조성립(趙誠立)의 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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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부모 혹은 직계 가족의 초상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조직한 계. 천안 지역의 연반계는 주로 부모의 장례를 효율적으로 치르려고 결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상여계(喪輿契)·위친계(爲親契)·상포계(喪布契)·친목계(親睦契)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반계는 한 마을 또는 왕래가 빈번한 인접 마을의 구성원들이 계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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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된 운파산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목천군 읍내면 의식동, 북면의 역촌 일부, 운파, 뱅골이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운전리로 병합되어 목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운전리가 되었으며, 이후 본 마을 이름 찾기 일환으로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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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때 병합한 응곡리의 ‘응’ 자와 원동리의 ‘원’ 자를 따서 응원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목천군 서면 응곡리와 원동리를 병합하여 응원리라 하고 목천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응원리가 되었으며, 이후 본 마을 이름 찾기 일환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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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 지역의 목천 현감 및 직산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양 할아버지는 형조 판서를 지낸 이목연(李穆淵), 아버지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이인명(李寅命)이다. 이계하는 양 할아버지인 이목연이 목천에 향저를 마련한 것을 새로이 개축 정비하여 자손들이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뒤 전주 이씨 선파(璿派)를 우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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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안에 우거한 문신. 이목연(李穆淵)[1785~1854]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 대군(廣平大君)의 후예이다. 서울과 광주에서 살아온 문중이지만, 목천이 십승지지(十勝之地)로 꼽히는 살기 좋은 고장이며 학문을 숭상하는 고장이라고 여겨 목천과 인연을 맺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춘(伯春), 호는 소소(笑笑)이다. 할아버지는 이창중(李昌中)이고,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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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천안 목천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경부(警夫), 호는 인촌(仁村)이다. 태조의 배향 공신이며 개국 공신인 조인옥(趙仁沃)의 증손자이고,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조뇌(趙賚)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이조 참의를 지낸 조순생(趙順生)이고, 어머니는 사정 원유용(元有容)의 딸 원주 원씨(原州元氏)이다. 조명(趙銘)[?~1478]은 16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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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당시 변합된 마을 중 양지말의 ‘지’ 자와 상남산·하남산의 ‘산’ 자를 따 지산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목천군 서면 상남산리, 하남산리, 양지리를 병합하여 지산리를 개설하고 목천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면 지산리가 되었으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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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조선 시대 목천현 지역이었던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일대는 안동 김씨가 세거하던 곳으로 옛 지명은 노은동(老隱洞)이었다. 숙종 대의 학자 김상기(金相器)는 동네 이름을 따 호를 노은이라 하고 동성산(銅城山) 아래에 노은정(老隱亭)을 지었다. 천안시에 현존하는 누정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천안 노은정은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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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천안의 땅 이름 이야기』[1999]에 의하면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통합된 한천리의 ‘천’ 자와 괴정리의 ‘정’ 자를 따 천정리라 하였다. 목천군 서면 한천리와 괴정리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천정리로 병합되어 목천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천안읍이 천안시가 되면서 천원군 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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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천정리에서 매년 음력 시월 초에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천안시 목천읍 천정 1리의 한천 마을에서는 가을걷이를 마친 음력 시월상달에 길일을 택하여 왕자산(王子山) 산신을 위한 산신제를 지낸다. 그리하여 시월이 도래하면 먼저 제삿날을 택일하여 날을 잡는다. 그러나 만약 제를 앞두고 초상이나 출산이 있으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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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문화 등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지역의 향토 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자신들의 역사, 지리, 풍속, 산업, 문화 등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천안 지역에는 조선 후기에 발간된 개별 읍지가 있었다. 『대록지(大麓誌)』[1779], 『영성지(寧城誌)』[1852], 『직산현지(稷山縣誌)』[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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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천안에 묘소를 조성한 학자·효자. 황덕기(黃德基)[1545~1601]의 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경리(景履)이고 호는 비풍(比豊)이다. 할아버지는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 황우참(黃友參),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황윤림(黃潤霖)이며, 어머니는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역임한 한호(韓瑚)의 딸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첫째 부인은 민희증(閔希曾)의 딸 여흥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