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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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모내기를 마친 논에 공동으로 김매기를 하려고 조직된 마을 단위의 노동 조직.
[개설]
두레는 조선 후기 이앙법의 보급과 더불어 확산된 공동 노동 조직이다. 천안 지역에서는 지난날 주로 자연 마을 단위로 두레를 구성하여 공동으로 김매기를 했다. 그리하여 모내기를 마친 뒤 30일 남짓 지나면 마을별로 회의를 열고 두레의 임원과 품삯, 작업 순서 등을 결정한다. 이를 “두레 공사한다.”라고 일컫는다. 천안 지역의 두레는 1970년대 이전에 대부분 소멸되었다.
[역원]
천안 지역 두레의 임원은 우두머리인 좌상, 간사 역할을 하는 공원, 서기인 문서잡이, 두레꾼, 풍물꾼 등으로 구성되었다.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가송리 송정 마을과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신갈리 갈미 두레에서는 좌상이 두레의 김매기를 총괄하는 우두머리이다. 농사의 경험이 풍부하고 나이가 지긋한 자작농 중에서 책임지고 일을 추진할 만한 능력 있는 사람을 추대하였다. 대개는 마을을 대표하는 원로 가운데 한 명이 좌상을 맡았다. 좌상은 그 마을 주민들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아 모든 일정을 총괄하고 두레꾼을 통솔하는 역할을 했다.
공원은 좌상을 보좌하는 임원으로서 김매기를 독려하고 추진하는 일종의 작업반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문서잡이는 대개 이장이나 문서에 능한 사람이 맡았는데, 그날그날 두레로 김을 맨 각 세대의 논과 그 면적, 품값, 참석 여부 등을 장부에 기록하는 임원이다. 그 밖에 두레꾼은 집마다 두레에 참여한 일꾼들을 지칭하는데, 그 연령은 17~18세의 어린 사내아이인 꽁배에서부터 60세 미만의 중장년층이 주류를 이루었다. 두레 노동에 처음 나온 신입 두레꾼인 꽁배는 김매기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술심부름이나 담뱃불 관리 등 주로 허드렛일을 맡았다.
한편, 두레의 풍물꾼은 마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새납·꽹과리·징·장구·북·버꾸 등으로 구성되었다. 풍물패는 두레꾼들을 모이게 할 때에는 징을 울리고, 작업하거나 행진할 때에는 상쇠가 신호를 보내는 등 일사불란한 조직 체계를 갖추었다.
[두레노동]
천안 지역 두레의 김매기는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개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른바 아시매기[초벌매기], 이듬매기[두벌매기], 만물[세벌매기] 등이 그것이다. 첫 단계인 아시매기는 잡초가 돋아난 논바닥의 흙을 호미로 엎는 방식으로 김을 매는데 작업이 퍽 고되고 힘이 들었다. 초벌매기 후 일주일 정도 지나면 아시매기 때 엎어 놓은 논바닥을 다시 호미로 덮는 방식으로 이듬매기를 한다. 김매기의 마지막 단계인 만물은 논의 물을 완전히 뺀 상태에서 손으로 잡초를 훔친 다음에 이를 발로 밟아서 논바닥에 넣는 방식으로 제초 작업을 한다.
[의의]
두레는 논의 잡초를 제거하려고 한시적으로 조직하는 노동 조직이다. 제초제가 보급되지 않았던 1970년대 이전에 모든 농사는 사람의 노동력에 의지하여 김매기를 했다. 그래서 모내기를 마친 뒤에 막 돋아난 잡초를 제거하려면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노동력이 필요하다. 만약 제때에 김매기를 하지 않으면 웃자란 잡초가 벼의 성장에 적잖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시에 필요한 노동력의 문제를 마을 단위에서 공동으로 대응했던 지혜의 소산이 바로 두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