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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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金氏 |
영어공식명칭 | Samcheok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집필자 | 심일종 |
본관 | 삼척김씨 - 강원도 삼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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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세장지 | 실직군왕릉 - 강원도 삼척시 성북동 |
성씨 시조 | 김추(金錘) |
입향 시조 | 김추(金錘)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개설]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신라대보공(大輔公)김알지(金閼智)를 원조로 하여 신라 제56대 경순대왕(敬順大王)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삼척군(三陟君)에 책봉(冊封)되어 관향(貫鄕)을 삼척(三陟)으로 하였으며, 김추(金錘)는 김알지(金閼智)의 29세손이다.
[연원]
삼척(三陟)의 옛이름은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통일신라파사왕(婆娑王)때에 항복하여 505년(지증왕 6) 실직군주(悉直軍主)를 두었다가 신라경덕왕(景德王)이 삼척군(三陟郡)으로 하였다. 조선조인 1393년(태조 2)에는 목조(穆祖)[태조고조부] 비(妃)의 외가 고을이라는 이유로 부(府)로 승격시켰고,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都護府)로 하였다.
[입향 경위]
경순대왕(敬順大王)이 나라를 고려에 손국(遜國)한 뒤 고려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樂浪公主)와 결혼하여 낳은 여덟째 아들인 김추(金錘)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歷任)하고 삼척군(三陟君)에 봉(封)하여짐으로써 세거하게 되었다. 강원도삼척성(城)을 위시하여 그 일대와 평안도 중원군, 함경도 북청, 경기도 양주군 및 용인군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현황]
삼척김씨(三陟金氏)는 2000년 인구조사에서 25,442가구 79,98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삼척김씨(三陟金氏) 충절의 기개는 조선조에 와서도 이어져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중순(仲淳)은 단종손위(端宗遜位)를 보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여장망혜(藜杖芒鞋)로 여생(餘生)을 마쳤다”는 기록이 상장군(上將軍) 김공묘갈(金公墓碣)에 적혀있다. 또한 삼척김씨의 역대 주요 인물로서 김병충(金秉忠)을 빼 놓을 수 없다. 중종 반정 때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과 분의결책(奮義結策)하여 연산군(燕山君)의 혼정(昏政)에 반기를 들어 중종 반정을 성공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정국공신(靖國功臣) 107명 중의 한 명이다.
중종조에 동래부사(東來府使)를 지낸 김양필(金良弼)도 자랑할 만한 인물이다. 삼포왜란(三浦倭亂)때 큰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고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경상도절제사(慶尙道節制使) 겸 동래부사(東來府使)로 부임 그 치적이 주민의 함송(咸頌)하는 바 있었다고 한다.
현재 삼척 지역에서 삼척김씨 대종회의 활동에 주목할 만한 것은 ‘실직군왕대제’를 봉행하는 일이다. 대제는 서기 1838년 무술년에 실직군왕의 양릉이 확인되면서 단사(壇舍)와 제각(祭閣)을 월계 언덕에 설단하여 망제를 시행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매년 음력 3월 15일 11시에 봉행하는데, 이 날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종인(宗人)들이 실직군왕대제(悉直郡王 大祭)에 참석하여 엄숙하고 경건하게 봉행한다.
[관련 유적]
강원도 삼척시 성북동에는 김추의 외아들 김위옹(金渭翁)이 묻혀있는 실직군왕릉(悉直君王陵)이 있다. 실직군왕릉은 강원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