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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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陟朴氏 |
영어공식명칭 | SamCheok Par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집필자 | 심일종 |
묘소|세장지 | 과동고축(科洞古塚)|용묘(龍墓)|삼척군박원경묘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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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박혁거세 |
입향 시조 | 박원경 |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개설]
삼척박씨(三陟朴氏)는 삼척군대광(三陟君大匡)에 책봉된 박원경을 시조로 하고 있다.
[연원]
박원경은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고, 이후 권지교서정자(權知敎書正字), 개성부윤(開城府尹), 사농시사(司農侍事) 등의 벼슬을 지냈다. 공로가 있어 삼척군대광(三陟君大匡)에 책봉되어 삼척박씨(三陟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박원경의 아들 박준제는 고려 말 참지정사를 지냈고 손자 박인린은 중직대부를, 증손 박방실은 조선 때 군수를 역임하였다. 특히 박환은 성종 때 등과하였는데, 재능이 특출하고 학문과 덕망을 겸비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효자문이 세워졌다. 성종(成宗) 때 등과(登科)하여 청주병마절제사(淸州兵馬節制使)를 지낸 박산두(朴山斗)와 중종(中宗) 때 과거에 급제하고 승사랑(承仕郞)으로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역임한 박응성(朴應星)이 유명했으며, 박현좌(朴賢佐)는 광해군(光海君) 때 순충보조공신(純忠補助功臣)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증직(贈職)되고 척흥군(陟興君)에 봉해졌다.
[입향 경위]
삼척박씨 시조 박원경은 1365년(공민왕 14) 밀직부사로 상서에 오르고 삼척부원군에 봉해졌으며, 고려가 망하자 지리산에 은거하여 후진양성에 진력했다.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삼아 본관을 삼척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현황]
1600년(선조 3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박여량(朴汝樑)은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겸 춘추관(春秋館)의 기사관(記事官)을 거쳐 예·병·형 3조(曹)의 좌랑(佐郞)과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 등을 지내고, 광해군(光海君) 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이조판서(吏曹判書) 겸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으로 증직되어 척성군(陟城君)에 봉해졌으며 세자 좌빈객으로 세자를 교육시키도 하였다. 박윤종(朴胤宗)은 용양위부호군을 역임했고, 박이백(朴而栢)은 인조(仁祖) 때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어 봉직랑(奉直郞)으로 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을 지냈다. 그 밖의 인물로는 숙종(肅宗)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른 박익진(朴翊震)과 직제학(直提學) 박진경(朴震卿)이 유명했고, 박창기(朴昌基)는 철종조(哲宗朝)에서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떨쳐,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두문불출(杜門不出)했던 박병택(朴炳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이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삼척박씨 가문을 빛냈으며, 여러 요직에 등용되어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삼척박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서 1535가구 4929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관련 유적]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 과동 마을의 신라 고분 유적지 내에 무덤[과동 고분(용묘)]이 하나 있는데, 예로부터 원주민들은 이를 가리켜 ‘말무덤’, ‘큰무덤’ 등으로 불러왔다. 지방 읍지인 『척주지(陟州誌)』 등의 기록에는 ‘과동고축(科洞古塚)’, ‘용묘(龍墓)’, ‘삼척군박원경묘(三陟君朴元慶墓)’로 전해져 오던 무덤으로 삼척박씨 후손으로 시조의 행적과 묘소를 찾던 중 1980년대에 이 고분을 시조묘라고 한 바 있다. 당시 무덤의 분구는 직경 6m, 높이 2m 정도로 규모가 거대하였다고 한다.
1980년 말경에 삼척 박씨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개축하고, 묘비 및 문인석, 망주석, 장명등, 상석 등의 석물들을 갖추어 관리해오다 1991년에 이장하여 현재 묘는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가성에 신단비를 세워 매년 10월 10일 향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