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35
한자 海州 鄭氏
영어공식명칭 Haeju Je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분관|분종 시기/일시 14세기 - 해주 정씨 분관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56년 - 해주 정씨 입향조 정미수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12년 - 해주 정씨 입향조 정미수 사망
입향 시기/일시 16세기 초 - 해주 정씨 입향조 정미수 입향
본관 해주 - 황해도 해주
입향지 사능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해주 정씨 묘역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107 지도보기
성씨 시조 정숙(鄭肅)
입향 시조 정미수(鄭眉壽)

[정의]

정숙을 시조로 하고, 해평부원군 정미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세거성씨.

[개설]

고려조 시중평장사 정숙(鄭肅)을 시조로 하는 해주 정씨(海州 鄭氏)는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외척 집안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세거하는 해주 정씨는 문종의 외손자였던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 정미수(鄭眉壽)의 후손들이다.

[연원]

해주 정씨의 시조인 정숙은 고려 신종(神宗) 때 전법정랑 중현대부 전객서령 시중평장사(典法正郞 中顯大夫 典客署令 侍中平章事)을 역임하였다. 정숙의 조상이 황해도 해주 지역 수양산(首陽山) 아래에 세거하였는데, 고려 때 정(鄭)씨로 사성(賜姓)받았다고 전한다. 시조 이후 고려조를 거치며 세계는 지속되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아, 3~4대를 알 수 없다. 따라서 고려 후기 소부소윤(小府少尹)을 역임한 정언(鄭琂)과 대장군을 역임한 정초(鄭初)를 1세조로 하여 2개의 파가 구성되었다. 이후 정언의 아들대인 2세조에서는 찬성공(贊成公) 정윤규(鄭允珪), 문학공(文學公) 정윤경(鄭允卿), 판서공(判書公) 정윤진(鄭允珍)을 중심으로 각각 공파가 구분되어 모두 4개의 분파로 세계를 이어갔다. 이러한 가계는 1985년 『해주정씨대동보(海州鄭氏大同譜)』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문중의 공론에 따라 더욱 세분화되어 오늘날 29개 분파로 구성되었다.

[입향 경위]

해주 정씨가 경기도 남양주시와 관련을 갖게 된 것은 조선 단종 때부터이다.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폐위된 후, 단종의 비 정순왕후는 서인으로 전락하여 여생을 마무리하였다. 정순왕후의 사망 이후 문종의 사위였던 영양부원군(寧陽府院君) 정종(鄭悰)과 정종의 문중에서는 정순왕후의 묘를 해주 정씨 선영이 있는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지역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한편 정종은 문종의 적장녀이자 단종의 누이였던 경혜공주와 혼인하여 왕실의 인척이었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임금에 즉위하자 정종은 폐위된 단종과 정순왕후를 옹호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역모를 도모하였다는 죄목으로 사사(賜死)되었다. 이때 유배되어 관비가 되었던 정종의 처 경혜공주가 아들을 낳자 당시 국왕이었던 세조세조정희왕후는 그 아이를 직접 양육하였으며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가 해평부원군 정미수이다.

정미수는 성종이 세자이었던 시절부터 성종의 수발을 들며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였다. 이를 계기로 정미수는 성종이 즉위한 이후 선전관과 형조정랑을 역임했으며, 연산군 대에는 판의금부사와 우찬성을 역임했다. 이후 중종반정 당시 공을 세워 정국공신 3등이 되었고, 해평부원군에 봉해졌다. 1512년(중종 7) 정미수가 사망한 이후 정순왕후의 묘 근처에 묘역이 조성되었는데, 이후 해평부원군 후손들의 묘역 또한 정미수의 묘역 인근에 조성되었다.

17세기 후반 영조 대에 들어서 단종과 단종 비 정순왕후가 신원되고 묘역도 능으로 조성되었는데, 이때 정순왕후의 묘 근처에 조성되었던 해주 정씨 문중의 묘들은 영조의 윤허로 능역 내에 존재할 수 있었다. 이는 정순왕후의 묘를 조성하고, 수묘해 온 해주 정씨의 의리와 정성을 임금이 직접 인정한 것이었다. 사실상 사릉이 위치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지역은 해주 정씨의 주요한 문중 지역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색에 따라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해주 정씨 해평부원군 종가는 본래 왕실 외척으로서 중앙 정치에 참여하고자 주로 거주하였던 한성부에서 경기도 남양주 진건읍 사능리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현황]

『양주군지』

1970년대에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 세거하는 해주 정씨는 모두 11가구, 약 40여 명으로, 오늘날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과 지금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편입된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도농동, 호평동, 평내동, 일패동, 이패동, 삼패동]에 주로 거주하였다. 이후 2015년 실시된 인구 조사에 따르면 해주 정씨 573명이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유적]

해주 정씨와 관련한 유적으로는 대표적으로 정미수의 묘역과 신도비 및 해주 정씨 묘역을 들 수 있다. 해주 정씨 묘역은 사릉 경내에 있어 과거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석물들도 대체로 상태가 양호하다. 정미수 묘역은 사릉의 능묘 우측 아래에 있고, 신도비는 1513년에 세워졌다. 또한 정미수의 손자이자 사헌부감찰을 역임한 정원희(鄭元禧)의 묘소와 정원희의 아들 정흠(鄭欽)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해주 정씨 종가 앞에는 해평부원군 정미수와 정흠의 아들인 해풍군 정효준(鄭孝俊)을 모신 해평사(海平祠)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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