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536 |
---|---|
한자 | 杞溪 兪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주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510년 - 기계 유씨 집성촌 유강 출생 |
---|---|
개설 시기/일시 | 16세기 - 기계 유씨 집성촌 형성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570년 - 기계 유씨 집성촌 유강 사망 |
소재지 | 기계 유씨 집성촌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 |
성격 | 동성 촌락 |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에 있는 기계 유씨 집성촌.
[개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에 있는 기계 유씨 집성촌(杞溪 兪氏 集姓村)은 16세기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명칭 유래]
‘차산리(車山里)’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한글학회의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수리산을 넘어간다는 의미로 ‘수리너머’, ‘수리너미’, ‘수레너머’, ‘차산’ 등으로 불리면서 ‘차산리’로 굳어졌다고 한다. 또한 2000년에 간행된 『우리 고장 남양주』에 따르면 기계 유씨 집성촌의 입향조라 할 수 있는 유강(兪絳)이 사망한 후 유강의 증손 유성증(兪省曾)이 유강의 산소에 석물과 신도비를 세우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서 우마차로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당 고개의 이름을 차유령(車踰嶺) 또는 수레넘어고개라고 부르고, 마을 이름을 ‘차산리’로 지정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형성 및 변천]
기계 유씨 집성촌은 유강에 의해 처음 형성되었다. 유강은 1510년(중종 5) 출생하여 1570년(선조 3)에 사망한 인물로 자(字)는 강지(絳之), 시호(諡號)는 숙민(肅敏)이다. 1531년 식년시에 합격한 후, 1541년 알성시에서 을과 1등을 하였다. 과거 급제 후 승문원 부정자에 처음 임명된 후 여러 차례 승진을 거쳐 전라감사, 대사간, 대사헌, 평안감사,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유강이 사망한 후 자손들은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에 해당하는 지역에 유강의 묘소를 조성하였다. 이후 유강의 자손인 유성증, 유황, 유철, 유희증 등의 묘소도 잇따라 조성되었다. 기계 유씨는 선조의 묘소를 중심으로 촌락을 이루며 거주하였고, 현재 집성촌으로 기능하고 있다.
[자연환경]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는 동쪽에는 고래산이, 서쪽에는 문안산 자락이 펼쳐 있어 주변 지역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한강 수계 2차 지류로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 맹골동에서 발원한 맹동천이 흐른다. 맹동천은 묵현천과 합류한 후 북한강으로 흐른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편 강물이 흐르고 있었던 만큼 묘소를 조성하기 적합한 지형이었으며, 이로 인하여 조선 시대 고종의 왕릉을 세울 때에도 거론될 정도로 풍수가 좋았다고 한다.
[현황]
1953년 기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에 거주하였던 기계 유씨의 세대수는 71세대였다. 하지만 이후 다년간 진행된 도시화 및 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하여 기계 유씨의 집성촌은 이전보다 해체된 듯하다. 하지만 기계 유씨 파조의 묘소 및 유강의 신도비 등이 있어 기계 유씨 문중의 구심점으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