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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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婚禮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한미옥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행해지는 혼인 관련 의례.
[개설]
혼례는 혼기에 이른 남녀가 부부로 결합하는 의례이다. 인간은 이 의례를 치름으로써 하나의 가정을 이루게 되고 사회적으로는 보다 당당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혼례의 절차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있는 의혼(議婚),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징(納徵), 청기(請期), 친영(親迎)의 육례(六禮)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있는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의 사례(四禮)를 규범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의 기본적인 절차로 정해진 것이고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이렇게 행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화순 지역에서 『주자가례』나 『사례편람』에 의한 전통적인 혼례는 거의 행해지지 않으며, 대개는 상업적인 예식장에서 서양식 혼례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전통 혼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향교와 같은 곳에서 간혹 치러지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혼례라고 관념되는 의례의 형태는 『주자가례』의 도입과 함께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그 의례 형식이 완성되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전통 혼례의 모습은 조선 후기의 『사례편람』의 저술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시행된 혼례의 절차는 『주자가례』에 있는 육례와 『사례편람』에 있는 사례를 규범으로 삼았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통 혼례의 절차상 번거로움과 의식의 변화로 서구식의 혼례 문화가 정착되게 되었다. 과거의 전통 혼례가 신부의 집 마당에서 행해졌다면, 서구식 혼례는 상업화된 예식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절차]
화순 지역의 전통 혼례를 중심으로 하여 그 의례 과정과 습속을 진행 순서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혼전 의례(婚前儀禮)
화순 지역에서는 대개 남자는 17~18세, 여자는 15~16세에 혼례를 올렸고, 20세가 되어서야 결혼하는 경우에는 만혼으로 생각하였다. 혼전 의례는 의혼에서부터 날 받이, 혼수 보내는 과정 등의 절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선보기
혼기가 찬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주로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중매쟁이를 통해 혼인 성사를 위해 애를 쓴다. 중매쟁이가 적당한 혼처가 있다고 하면 부모들이 서로 양가를 방문해서 선을 보는데, 먼저 신랑 측에서 신부 측의 집에 가서 선을 보고 난 다음에 신부 측에서 신랑 측 집을 방문한다. 이는 혼인 대상자를 고를 때는 가문과 집안의 내력, 인품과 행실, 학식, 건강 등과 함께, 동성동본(同姓同本) 여부와 궁합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2) 사성 보내기
혼담이 진행되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신랑의 생년월일시가 적힌 사성(四星)을 보낸다. 사성을 ‘사성 단자’ 또는 ‘사주’, ‘사주단자’라고도 부르며, 신부 집에서 이것을 받아들이면 혼인은 결정된 것으로 본다.
3) 날 받이 보내기
사성을 받고 혼인을 응낙하는 답례로 신부 집에서 혼인날을 정해서 신랑 집에 보내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것을 ‘날 받이 보낸다’고 한다. 신부 측에서 보내는 이유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여자의 생리일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날 받이도 오행을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신랑과 신부의 생기 복덕(生氣福德)을 가려서 ‘살’을 제하여 정한다. 또 부모가 결혼한 달은 피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는 날짜만이라도 피하여 잡는다.
그런데 신부 측에서 받은 날이 신랑 집의 형편과 맞지 않으면 남자 측에서 다시 택일한다. 또 신부 집의 살림이 넉넉지 않으면 신랑 집에서 날 받이와 함께 혼수를 보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짐 속에는 신부의 옷감과 이불감, 솜, 예물 등이 들어 있다. 이것을 ‘신부를 싸 온다’고 말한다.
2. 혼례식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초행길을 떠나 초례를 치르고 첫날밤을 보낼 때까지의 혼례식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초행
신랑이 혼례를 올리기 위해서 신부 집에 가는 것을 초행(初行) 또는 초행길이라고 하며, 이때 몇 가지 의례가 행해진다. 신랑이 집에서 떠날 때는 사모관대를 차려입고 목안(木雁)을 안고 자기 집의 선영에 절한 다음에 출발한다. 또 초행길을 떠나는 날 새벽 단골이 와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리며 손을 비비기도 하고 신랑의 어머니가 손 비빔을 하기도 한다. 손 비빔 할 때는 떡시루에 불을 켜놓고 아들의 혼삿길이 무사하고 좋은 신부를 맞이하여 복되게 살기를 기원한다. 이때 만든 팥고물 떡은 근원떡이라고도 부르는데, 첫날밤 신부와 함께 나눠 먹으라고 싸준다. 화순군 청풍면 풍암리에서는 신랑신부가 찰떡같이 딱 붙어살라고 팥고물 찰떡을 조금 싸주고 그것을 첫날밤 둘이 먹으라고 한다.
초행길의 신랑은 처음부터 사모관대를 입고 가마나 말을 타고 가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양면 구례리 괴화동에서는 초행길에 신랑은 타인과 말을 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하여 삼가며 손위 어른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초행길을 가는 순서는 맨 앞에 함진아비가 가고 그 뒤를 이어서 신랑, 상객, 후행이 따른다. 상객은 주로 신랑의 조부나 부친이 되며 친척 중 부친과 같은 항렬의 어른이나 당숙, 고숙 등이 간다. 후행은 보통 손위 형이나 가까운 친구들로 대개 2~5명이 따라가며 이들을 ‘후객’ 또는 ‘후배’라고도 부른다. 함진아비는 ‘함쟁이’ 또는 ‘중방’, ‘중방쟁이’라고도 부른다. 함을 짊어지고 따라가며 주로 신랑의 친구 중에서 복이 많고 건강하며 첫 아들을 낳은 입심이 좋은 사람으로 세운다.
신랑 일행이 신부 마을에 들어서면 혼례식장인 신부 집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부 측의 안내로 미리 정해진 ‘주점’에 들러 쉬었다가 혼례 시간에 맞춰 신부 집의 대례청으로 간다. 신랑 일행이 당도하면 신부 측에서는 인접이 나와 접대하는데 상객은 신부 측 아버지나 백부, 숙부들이 접대하고 신랑과 후행들은 신부의 남자 형제들이 접대한다.
2) 함 받기
신랑과 후행들이 주점에 들면 ‘주점상’이 나오고 상객과 후행들이 이를 먹는 사이에 함진아비는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함을 짊어지고 신부 집으로 가서 함을 전달한다. 이를 신부 측에서는 ‘함을 받는다’고 하고 신랑 측에서는 ‘함을 판다’고 한다. 함 속에는 혼례에 필요한 기물과 예물, 그리고 복되게 살기를 기원하는 상징물들이 들어 있다. 혼서지, 신랑의 혼례용 관복, 신부의 원삼과 족두리, 청홍포 가리개, 고추나 숯, 실, 소금, 목화송이, 풀소금, 고추장 메주, 미역, 쌀, 엿기름 등이다.
화순군 백아면 서유리에서는 함 속에 든 쌀과 미역으로 신랑 신부에게 밥을 지어 먹이면 부부간에 자손이 번창 하고 금슬이 좋다고 한다. 고추는 삼신이 들 때 아들을 낳으라는 뜻이고, 목화송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의 명이 길기를 바라는 것이며, 소금이나 숯, 메주 등은 잡귀를 쫓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함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며, 함은 신부의 어머니가 받는다. 그러나 화순읍 삼천리의 경우 집안의 부인 중에서 복을 많이 받고 팔자가 좋은 사람이 받는 경우도 있다. 함을 받을 때는 치마로 받으며 안방으로 들어가 방위를 보아 놓는다.
3) 탈선
신랑이 혼례를 치르기 위해 신부가 사는 마을 입구에 당도하거나 신부 집 초래청에 가는 도중에 마을 청년들과 문답이나 탈선(奪扇) 시, 마상풍월(馬上風月) 등의 지혜겨룸이 벌어지고 신랑이 가지고 있는 부채를 빼앗는 탈선이 벌어진다. 이것은 신랑의 지적 능력과 재치, 자질, 담력 등을 시험하는 것으로 마을의 처녀를 데려가는 신랑에 대한 마을 청년들의 배타적인 감정의 발로이기도 하다. 신랑이 주점에서 초례청으로 갈 때 액막이를 하기 위해 파랑 베로 만든 모선(毛扇)을 들고 간다. 모선을 들고 가는 유래를 청풍면 풍암리에서는 신랑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라고도 하고 이양면 구례리에서는 태양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서 라고도 한다.
4) 혼례식
신랑이 혼례식장인 전안청에 도착하면 인접의 안내를 받아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선다. 전안청을 ‘대례청’, ‘다례청’, ‘초례청’, ‘취임청’이라고도 부르는데 보통 마당에다 덕석을 깔고 그 위에 혼례상을 차리며 상 뒤에는 병풍을 세우고 위에는 차일을 친다. 화순에서는 차일을 치는 이유로 화순읍 삼천리에서는 ‘천년 묵은 독사가 새로 변하여 날아다니는데 그 그림자가 술잔에 비치게 되면 그 술을 마시는 사람이 죽게 되므로 그 그림자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혼례상은 ‘초례상’, ‘지임상’, ‘예식상’, ‘다례상’ 등으로 부르며 절구통 위에 안반을 올려놓고 그 옆에 베를 둘러 만든다. 상 위에는 신랑을 상징하는 수탉과 신부를 상징하는 암탉을 놓고 촛대 두 개, 소나무나 대나무 가지 두 개, 삼색실로 연결된 술잔 둘, 밤, 대추, 은행, 떡을 놓는다. 또 벼나 쌀, 콩, 팥, 목화씨 등을 차려놓고, 무를 깎아서 오리나 숭어 한 쌍을 만들어 놓는데 신랑 측에는 대추를, 신부 측에는 밤을 끼워 놓는다. 또 송죽의 가지에는 종이로 꽃을 만들어 함께 꽂아놓기도 한다.
신랑이 전안청에 들어올 때 부정을 막기 위해서 백아면 서유리에서는 대문 밖에 짚불을 피워놓고 넘어가도록 하거나 신랑에게 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만일 마을에서 출산한 집이 있으면 그 집을 향해 삼신상에 물과 미역, 쌀을 차려놓고 재배한 다음 전안청에 들어오게 한다. 그러나 초상이 났을 때는 예식에 별 지장을 주지 않고 오히려 길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 집을 향해서 읍을 한다.
혼례의 홀기는 소례(小禮)인 전안례(奠雁禮)와 대례(大禮)인 교배례(交拜禮), 합근례(合巹禮)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마을에 따라서는 약간 다른 홀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홀기는 대개 소례 때는 대반읍(大盤揖) → 하마(下馬) → 찬자엄서입(贊者掩婿入) → 전안청(奠雁廳) → 종자봉안수지서(從者奉雁受之婿) → 서집안북향궤(婿執雁北向跪) → 치안어지봉안치우탁상(置雁於地奉雁置于卓上) → 면복흥재배(面伏興再拜)의 순서로 진행된다. 대례 때는 찬자인서(贊者引婿) → 교배석전(交拜席前) → 관세위남향립(盥洗位南向立) → 부인교배석전(婦人交拜席前) → 관세위북향립(盥洗位北向立) → 서읍부취(婿揖婦就) → 신부재배(新婦再拜) → 서답일배(婿答一拜) → 신부재배(新婦再拜) → 신랑우답일배(新郞又答一拜) → 신랑신부각궤(新郞新婦各跪) → 일배례재행행여지(一拜禮再行行如之) → 대례필(大禮畢)의 순서로 진행된다.
5) 합방례, 관대 벗김
대례가 끝나고 신랑과 신부가 한 방에서 서로 대면하는 것을 합방례(合房禮) 또는 병합례라고 한다. 먼저 신부가 방으로 들어간 다음에 신랑이 들어간다. 대례가 끝나고 신랑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마을 사람들이 목화씨나 콩, 팥은 물론 볍씨까지 신랑의 품속에 넣어주기도 하고 신랑이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홍두깨를 놔두고 신랑이 잘못하여 넘어지도록 하기도 한다. 특히 신랑은 인접이나 신부의 인도를 받아서 방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청풍면 풍암리에서는 인접이 들어오라 해서 들어가면 안 되고 신부가 들어오라고 인도할 때만 들어가야 한다고도 한다.
신랑과 신부가 들어가면 인접의 부축을 받아 예복을 벗기는데 이를 ‘관대(冠帶) 벗김’이라고 한다. 관대 벗김이 끝나면 큰상이 들어오는데 이때 병풍을 걷어 신부와 상면시키기도 하고 그렇지 않는 마을도 있다. 화순읍 삼천리에서는 병풍을 걷지 않고, 신랑이 요기를 한 다음에 신랑이 먹고 남긴 음식을 병풍 너머로 넘겨주면 신부가 받아서 먹고 저녁에 동상례(東床禮)를 할 때 비로소 같이 자리에 앉는다. 한편 큰상을 받은 신랑 신부는 거의 손을 안 대고 먹는 시늉만 하고 물리치는데, 이 음식은 신랑 집으로 보낸다. 또 신랑신부가 큰상을 받고 먹을 때 밤과 대추를 먼저 먹어야 첫 아들을 낳는다고도 한다.
(6) 동상례와 첫날밤 보내기
동상례(東床禮)는 ‘신랑 다루기’라고도 한다. 동상례는 신랑과 신부 집안의 동년배 친척들이 혼례식 날 저녁에 서로 만나 얼굴을 익히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친교 의례이다. 일가친척들은 노는 자리에서 신부를 뺏어갔다고 신랑을 다루며 처녀 값을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도암면 도장리에서는 신랑을 횃대와 같은 곳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방망이나 몽둥이로 발바닥을 때리는 일까지도 있다고 한다. 신랑은 그 닦달에 못 이겨 돈이나 술, 음식 등을 내놓아 모인 사람들을 대접한다.
동상례가 끝나면 신랑과 신부가 첫날밤을 보낸다. 이 의례를 치름으로써 신랑신부는 완전히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다. 신방은 안방에 마련한다. 동상례가 끝나고 신랑과 신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신부 어머니가 병풍을 뒤쪽으로 치우고 자리를 깔아 신방을 마련한다. 신랑이 먼저 신방에 든다. 만일 첫날밤을 신랑 집에서 보낼 경우에는 신랑의 어머니가 신방을 꾸미고 신부가 먼저 신방에 든다. 잠시 후 첫날밤을 지내기 위해 다시 원삼과 족두리로 단장한 신부가 들어오고 이어 간단한 음식과 술이 차려진 요기상이 들어오는데 이것을 ‘근원상’, ‘주안상’ 또는 ‘합의상’이라고 부른다.
첫날밤을 보내는 것도 일정한 절차가 있다. 신랑과 신부는 주안상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는데 먼저 신랑이 신부에게 한쪽에 놓여 있는 주안상을 가져오도록 하여 서로 술을 먹는다. 이를 초배주라고 한다. 술을 든 다음 신랑은 신부에게 음식을 먹도록 권하거나 집어준다. 이때 밤을 먼저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첫날밤에 신부가 신랑에게 손수건과 같은 것을 선물로 주는 관습이 있다. 잠자리에 들 때는 상을 윗목으로 물리고 신랑이 신부의 족두리를 벗기고 나서 원삼과 버선을 벗긴다. 예복을 신랑 집에 보내버렸을 때는 원삼 족두리는 벗기지 않고 대신 신부의 귀밑으로 땋은 귀영 머리나 옷고름을 풀어주는데, 청풍면 차리에서는 신부의 앞날이 훤히 열리라고 옷고름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 다음 불을 끄는데 입으로 끄면 안 되므로 심지를 손으로 눌러서 끄거나 이불자락이나 옷자락으로 끄기도 하며, 문바람으로 끄기도 한다. 또 첫날 저녁에 불을 끈 사람이 먼저 죽는다고 하여 불을 끄지 않고 요강 속에 넣어놓고 잠자리에 드는 경우도 있다.
신랑과 신부가 잠자리에 들면 ‘신방 엿보기’를 한다. 이웃이나 친척 아낙들은 창에 구멍을 뚫어놓고 잠자리를 엿보는데, 그 이유는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혼인시켜놓고 걱정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3. 혼후 의례(婚後儀禮)
혼례식을 마친 후 신부는 신랑 집에 와서 시부모를 비롯하여 신랑 인척에게 새사람으로서의 예를 올리고 다시 신랑과 신부가 신부의 집으로 간다. 이것이 바로 신행과 재행의 과정으로, 이것을 마쳐야 비로소 혼인 대사가 끝난다고 할 수 있다.
1) 신행(新行)
신부가 혼례식을 마치고 처음으로 시가에 가는 것을 ‘신행’ 또는 ‘근친’이라고 한다. 지금은 신랑과 신부가 함께 신행길에 오르지만, 과거에는 신랑만 먼저 가고 신부는 혼인 후 1년이 지나야 신행하는 경우도 있었고, 3년 후에 신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신부가 혼인 후 바로 신행길에 오르지 않고 1년이나 3년 동안 친정에 있다가 가는 것을 ‘묵힌다’고 한다. 백아면 서유리에서는 대개 친정 형편이 좀 나은 사람이 묵혔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길일을 택해 신행 날짜를 따로 잡아서 음식을 장만해서 가지고 간다.
신행에는 신랑의 초행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이 따르는데 상각[상객]과 짐꾼, 그리고 일가의 손위 여자 두세 명으로 이루어진 후행이 따라간다. 신행길에는 여러 가지 주술적인 행위와 시집살이 잘하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신부의 가마가 출발하려 하면 무명씨와 콩, 소금을 가마에 뿌려 잡귀가 범치 못하게 하며 신부의 어머니와 친척 여자들이 시집살이 잘하고 남편에게 복종하고 살라는 등의 말을 해준다. 또 부유한 집에서는 가마에 잡귀가 범치 못하도록 호랑이가 그려진 담요를 가마 위에 얹고 간다. 일반에서는 호랑이 무늬가 수놓아진 방석을 깔고 가기도 한다. 백아면 서유리에서는 주머니에 쌀을 담은 세미 쌀을 여러 개 만들어 가마 속에 넣고 가다가 당산나무나 사명담 고개, 징검다리, 물가, 샘, 궂은 곳 등을 지날 때마다 던지거나 나무에 걸어놓고 가면 잡귀가 그것을 먹고 범접하지 않으며 잠을 앗아간다고도 한다. 이 쌀을 ‘세미 쌀 주머니’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화순읍 삼천리에서는 신부가 친정의 복을 다 가져 가지 말도록 하는 일도 있고, 친정 동네의 샘물을 떠가지고 가서 시가 동네 샘에 붓는 일도 있다.
신부 일행이 신랑 마을에 도착하고 신부의 가마가 시댁 문전에 당도하면 잡귀를 쫓기 위해 대문 앞에 시루와 물을 올린 상을 차려놓고 짚불을 피우며 동네 사람들이 징을 친다. 그러면 신부의 가마가 불을 넘어 신랑 집으로 들어간다. 이때 가마에다 콩이나 팥, 무명씨, 소변을 뿌려 잡귀를 쫓기도 한다. 신부 가마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신랑이 가마 문을 열어준다. 이어서 신랑 측에서 나온 인접이 신부를 맞이하여 방으로 들어간다. 가마가 들어올 때 어린 아이나 신랑이 가마를 보면 ‘가마 주장살’을 맞는다고 하여 보지 못하도록 한다. 가마가 큰방 문 앞에 닿으면 신랑이 가마 문을 열어준다. 그러면 신부 인접이 나와서 가마 안의 신부를 부축하여 방으로 들어간다. 이때 살이 있는 신부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부엌을 지나 뒤안으로 돌아서 뒷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2) 구고례(舅姑禮)
신부가 시가에 와서 일가친척들을 뵙고 첫 인사를 드리는 것을 ‘구굴이’ 또는 ‘구걸’이라고 한다. 이 구굴이는 보통 신행한 날 저녁때 쯤 한다. 마당에 차일과 병풍을 쳐서 자리가 마련되면 신부가 미리 마련해온 폐백감을 상 위에 놓고 폐백을 올린다. 폐백 음식은 대개 삼실과로서 밤, 대추, 곶감을 놓고 이밖에 엿, 문어발을 꽃처럼 오려 만든 봉어(鳳魚), 그리고 암탉과 수탉을 놓는데 만일 부모님 중에서 한 분만 계실 때는 닭을 한 마리만 준비한다. 이어 시부모에게 큰절하고 술잔을 올리며, 가족의 서열에 따라 절하고 술잔을 올리는데 대개 육촌까지만 하고 나머지 친척들은 모두 한꺼번에 절한다. 며느리에게 절을 받은 시어머니는 밤과 대추를 한 움큼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주며 부귀다남 하라고 축원한다. 청풍면 풍암리에서는 며느리는 친정에서 해 가지고 온 입떡치기 떡을 크게 떼어서 잔소리하지 말라고 시어머니 입을 막아버린다고 한다.
3) 재행
혼례를 올린 후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신부의 본가에 가는 것을 재행(再行)이라고 한다. 이것을 ‘재앙걸음’ 또는 ‘지앙간다’, ‘재앙간다’고 한다. 재행은 시집온 3일 만에 가는 ‘삼일근행(三日近行)’이 일반적이다. 화순군 백아면 서유리에서는 재행을 장모 눈물 닦아주러 가는 길이라고 표현하였다. 재행 갈 때도 이바지를 해가지고 간다. 이바지는 떡살로 인절미, 술, 쇠고기 등과 같은 음식들이다. 당일 신행을 해서 동상례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재행 가서 동상례를 치른다. 재행에서 돌아올 때는 갈 때와 마찬가지로 이바지를 해온다. 대개 신부 집에서 2~3일 머물렀다가 신랑 집으로 돌아간다. ‘앉은 재행’ ‘앉은뱅이 재행’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처가가 멀거나 가세가 넉넉하면 오래 머물다 가는 것을 말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신랑이 초행길을 떠날 때, 만약 같은 동네에서 초행길을 떠난 사람이 또 있으면 먼저 떠나야 치이지 않는다고 서로 먼저 출발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혼례식 날 신랑이 신부 집 대문을 들어갈 때 가마니를 엎어 놓은 곳에 올라섰다 내려온다. 이는 신랑이 오는 길에 혹시 붙었을지 모를 액을 몰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혼례식 상 위에 올라간 음식 등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혼례상의 쌀이나 미영씨를 먹으면 이를 갈지 않는다거나, 혼례상의 무로 만든 숭어를 먹으면 이가 아리지 않고, 혼례식 때 쓴 표주박 색실을 가져다가 아이의 옷깃에 달아주면 아이가 오래 산다는 속신이 있어서 혼례식이 끝난 후 사람들이 서로 가져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