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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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鏞台 |
영어공식명칭 | Jo Yongta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은영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시위는 3월 20일 오전 9시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신창 야학교에서 시작되어 군북 장터로 퍼져 나갔다. 오후 1시경 3,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 운동을 전개하자, 현지 경찰과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들이 공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오후 5시경에 군중은 5,000여 명으로 늘어나 경찰 주재소로 나아갔다. 사태의 급박함을 느낀 일본 경찰이 시위대에 공포를 발사하고 조준 사격을 하면서 현장에서 21명이 순국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많은 군중이 무참히 구타당하고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조용태(趙鏞台)[1871~1919]는 1871년 9월 26일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시위 과정 속에서 군중이 5,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일본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하였다. 이때 선두에 서서 격렬하게 만세 시위를 이끌던 조용태도 적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용태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이 인정되어 1977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