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200852
한자 趙聲根
영어공식명칭 Jo Seonggeu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함안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고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얼 20일 - 조성근 군북 시장 만세 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19년 3월 20일연표보기 - 조성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8년 - 조성근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20일 - 조성근 군북 시장 만세 운동 주도
출생지 경상남도 함안군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함안군
활동지 경상남도 함안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함안 지역에서는 서울3·1 운동 이후 독립 시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도하여 3월 19일 함안읍 만세 운동과 3월 20일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을 거행하였다. 군북 시장 만세 운동은 조석규(趙碩奎)·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李在衡)·조정래(趙正來)·조성규(趙聖奎)·조경식(趙璟植)·조형규(趙炯奎) 등이 계획하였다.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고 인근 지역에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독립 만세 운동은 오전 9시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신창 야학교에서 50여 명의 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를 신호로 군북 장터에 있던 군중이 일제히 궐기하였다.

오후 1시경 3,000여 명의 대대적인 군중이 만세 운동을 전개하자, 군북 경찰 주재소 경찰과 이곳에 파견되어 있던 마산 중포병 대대 병력 16명이 출동하여 공포를 발사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오후 5시경 5,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다시 궐기하여 경찰 주재소로 달려갔다. 사태의 급박함을 느낀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자, 시위 군중은 격노하여 투석으로 대항하며 주재소의 유리창과 벽을 파괴하였다. 이에 일본 군경은 시위대를 향하여 조준 사격을 하여 현장에서 21명이 순국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많은 시위 군중이 무참히 구타당하고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조성근(趙聲根)[?~1919]은 군북 시장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준비 과정에서 신창 야학교의 교사 및 학생들과 독립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제작하였다. 30월 20일 준비한 태극기를 배포하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만세 시위를 이끌다가 일본 군경이 쏜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8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국가 보훈처 공훈록(http://www.mpva.go.kr)
  •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공훈록(http://www.i815.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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