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7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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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準九 |
영어공식명칭 | I Jun gu |
이칭/별칭 | 영구(齡九),성오(聖五),평칙(平則),신암(信庵),두산(斗山)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류진희 |
[정의]
근대 함안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여주(驪州). 초명은 영구(齡九), 자는 성오(聖五)·평칙(平則), 호는 신암(信庵)·두산(斗山). 여주 이씨함안 입향조 이란(李鸞)의 장손 이극(李極)이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山仁)에서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두곡(杜谷)으로 이주하여 대대로 세거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용필(李容必)이고, 아버지는 만송(晩松)이종화(李鍾和)이다.
[활동 사항]
이준구(李準九)[1851~1924]는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두곡에서 태어났다. 연재(淵齋)송병선(宋秉璿)과 면암(勉庵)최익현(崔益鉉)을 따라 배웠으며,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1910년 국권 피탈(國權被奪) 후 「대림우(大霖雨)」·「난불화(蘭不花)」 등의 시를 지어 통한하였다. 노백헌(老柏軒)정재규(鄭載圭)와 함께 친구와 가족을 이끌고 함께 간도(間島)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으나 정재규의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운곡 서당(雲谷書堂)에서 주자(朱子)의 석채(釋菜)를 행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런 와중에도 1919년 고종의 장례 때 조영규(趙映奎)에게 편지를 보내 일본이 막더라도 졸곡(卒哭) 절차를 이행하자고 제의하여 이를 실행하였다. 또한 신식 학교인 동명 학교(東明學校) 교사(校舍) 신축과 운영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학문과 저술]
경사(經史), 병기(兵機), 산수(算數) 등에 모두 통하였다. 특히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 『가례(家禮)』 등을 깊이 연구하였다. 저서로 문집인 『신암집(信庵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양촌 뒷산 오도봉(吾道峯) 아래에 있다.
[상훈과 추모]
유림(儒林)에서 도남계를 맺어 학덕을 추모하였다. 후손들이 여항면 내곡리에 청간정(淸澗亭)을 창건하여 유덕(遺德)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