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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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菴集 |
영어공식명칭 | Sinamjip |
이칭/별칭 | 『신암 문집(信菴文集)』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동욱 |
[정의]
1926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준구의 시문집.
[저자]
이준구(李準九)[1851~1924]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평칙(平則), 호는 신암(信菴)이다. 13세 때 함안 향교에 나가 함안 군수로부터 문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등 유학에 관한 서적을 깊이 연구하였다. 경술국치 후에는 노백헌(老柏軒)·정재규(鄭載圭)와 함께 간도(間島)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으나 노백헌의 별세(別世)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로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여 운곡 서당(雲谷書堂)에서 제자들을 길렀다. 함안의 선비들인 일산(一山)조병규(趙昺奎), 금계(錦溪)조석제(趙錫濟), 일헌(一軒)조병택(趙昺澤), 서천(西川)조정규(趙貞奎), 우산(芋山)이훈호(李熏浩) 등과 한천재(寒泉齋)에서 학문을 연마했으며 또한 연재송병선, 면암최익현 등 당대 명유들과 교유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신암집(信菴集)』은 이준구가 세상을 떠난 후 3년 되는 해인 1926년에 장자 필주(弼胄)가 원고를 모으고 과재(果齋)이교우(李敎宇)가 교정을 보아 간행하였다. 서문(序文)은 이교우가 짓고 발문(跋文)은 조영규(趙映奎)와 이교우가 지었다. 『신암 문집(信菴文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5권 2책의 연활자본(鉛活字本)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1면 12행에 1행의 자수는 28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신암 문집(信菴文集)'으로 되어 있다. 경상 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에는 한천부(寒泉賦)를 비롯한 부(賦) 2편, 시(詩) 160제(題) 168수(首), 만사(挽詞) 32수가 실려 있고 권2에는 편지글 81편이 실려 있다. 권3에는 잡저(雜著) 2편, 설(說) 2편, 서(序) 6편, 기(記) 11편, 발(跋) 6편이 실려 다. 권4에는 잠(箴) 2편, 명(銘) 2편, 상량문(上樑文) 4편, 축문(祝文) 3편, 제문(祭文) 11편, 묘지명(墓誌銘) 2편, 비(碑) 1편, 묘표(墓表) 4편, 묘갈명(墓碣銘) 2편, 행장(行狀) 11편, 유사(遺事) 2편, 전(傳) 1편이 실려 있다. 권5는 부록 편으로 언행록(言行錄), 시병기문(侍病記聞), 행장(行狀),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행장은 문인 이종홍(李鍾弘)이 지었다.
[의의와 평가]
이준구는 스승인 간재(艮齋)전우(田愚)의 학설을 계승해 낙론계(洛論系) 성리설을 주장하는 학자임에도 노사(蘆沙)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인 노백헌(老栢軒)정재규(鄭載圭), 농산(農山)정면규(鄭冕圭), 명호(明湖)권운환(權雲煥) 그리고 노백헌의 문인인 이교우·권재규(權載奎) 등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고, 마지막까지 도를 지키기 위해 함께 위정 척사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그의 뜻이 「경술 대림우(庚戌大霖雨)」, 「난불화(蘭不花)」 등의 시에 잘 드러나 있다. 19세기~20세기 초 일본과 서양의 침략으로 체제와 가치관이 흔들리고 국권이 상실되어 갔던 시기에 유교적 지식인으로서 굳건하게 지조를 지키려는 의지를 담은 글이 문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