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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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선사/석기,선사/청동기 |
집필자 | 임학종 |
[정의]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인류의 출현으로부터 문자에 의한 역사 기록이 남겨지기 이전까지의 시대.
[개설]
인류 문명에 대한 가장 분명한 기준은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을 남겼느냐이다. 즉,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을 남기기 전까지의 시대를 선사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선사는 지역이나 국가마다 그 시간의 폭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기원후인 삼한(三韓) 때 처음 문자 사용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에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까지를 보통 선사 시대라고 한다.
흔히 선사 시대의 인류 사회는 구석기 시대의 사냥과 채집 단계에서 신석기 시대의 농경 사회로 발전하고, 큰 돌을 이용하여 무덤이나 기념물을 만드는 청동기 시대로 발전하면서 계급이나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전 단계를 거친다. 구석기 시대의 사냥이나 채집 생활은 순전히 자연을 약탈하는 사회이며, 신석기 시대가 되면 초보적인 농경이 이루어지지만 주된 생업은 역시 사냥과 채집이었다. 특히 작살이나 그물을 이용한 물고기잡이가 많아지며, 토기를 만들어 쓰면서 조리와 저장을 하고, 서로 모여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된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 본격적인 벼농사가 이루어지며, 마을과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생기고 큰 돌로 무덤이나 기념물을 만들기도 한다. 이어 차츰 중국 동북 지역으로부터 새로운 철기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초기 국가의 틀을 갖추어 발전하게 된다.
[현황]
경상남도 함안군은 남고 북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함안천과 광려천, 석교천 등이 남쪽 높은 지대에서 북쪽의 낙동강과 남강으로 흘러든다. 곳곳에 낮은 구릉성 산지와 곡저 평야, 배후 습지를 이루고 있으며, 구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의 여러 유적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진동만과 마산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리한 입지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함안 지역의 선사 시대 유적으로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와 가야읍 도항리에서 구석기 시대의 몸돌이 채집되었으며, 법수면 우거리 유적에서는 석영과 규암, 화강암, 사암, 니암 등 다양한 암질의 자갈돌을 소재로 활용한 망치돌, 몸돌을 비롯하여 찍개류, 여러 면 석기, 긁개 등이, 가야읍 사내리에서는 소형의 양면 찌르개, 격지, 몸돌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서는 신석기 시대 전기의 압인문 빗살무늬 토기가, 법수면 윤외리에서는 돌보습이 채집되기도 하였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은 함안 지역 전역에서 확인된다. 함안천 변에 형성된 가야권의 봉성리 고인돌군과 북촌리 고인돌, 괴산리 고인돌, 광정리 고인돌, 도항리 고인돌, 석교천 변에 형성된 군북권의 동촌리 서촌 고인돌과 명관리 고인돌군, 중암리 고인돌, 광려천 변에 형성된 칠원권의 예곡리 야촌 고인돌군과 오곡리 여우실 고인돌군, 오곡리 가마실 고인돌군, 용정리 석전 고인돌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고인돌뿐만 아니라 집자리, 고상식 건물 터, 논 경작 유구 등의 생활 유적도 확인되었다. 특히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서촌 고인돌은 지표에 드러난 고인돌만 30여 기에 이르는 것으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큰 고인돌군이다. 이 고인돌의 분포권에서 성장 발전한 함안 지역의 선사 문화는 삼한 때에는 군북권과 가야권은 안라국(安羅國)으로, 칠원권은 칠포국(漆浦國)으로 성장, 발전한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