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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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劉興祚 |
이칭/별칭 | 영숙(永叔),흥우(興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112~11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기승 |
출생 시기/일시 | 1697년 1월 1일 - 유흥조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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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50년 5월 5일 - 유흥조 졸 |
묘소|단소 | 유흥조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112~115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한양(漢陽) |
대표 관직 | 용양위 부사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영숙(永叔), 초명은 흥우(興佑). 아버지는 용양위 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한 유석령(劉碩齡)으로, 유흥조(劉興祚)[1697~1750]는 큰아들이다. 첫 번째 부인인 한산 조씨(韓山趙氏)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고 두 번째 부인인 정선 이씨(旌善李氏)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한양 유씨 족보(漢陽劉氏族譜)』에 따르면 유흥조는 정3품 무관의 품계인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고 용양위 부사를 지냈다. 한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1704년(숙종 30) 4월 21일 필법(筆法)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려 뽑아 문서를 정서(正書)하는 사자관(寫字官)에 소속시켜 실습케 할 것을 청하는 상소가 실려 있는데, 유흥조의 이름이 여기서 확인된다.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한양 유씨 묘역에 있다. 한양 유씨 묘역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서편 무덤군의 가장 북단에 유흥조의 묘가 있다. 『한양 유씨 족보』에는 선영 부근에 합장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에 추증되었다고 『한양 유씨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