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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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宮愷 |
이칭/별칭 | 강중(康仲),지평공(砥平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황향주 |
출생 시기/일시 | 1517년 - 남궁개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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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40년 - 남궁개 식년시 급제 |
부임|활동지 | 남궁개 부임지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
묘소|단소 | 남궁개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함열(咸悅) |
대표 관직 | 지평 현감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강중(康仲).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역임한 남궁찬(南宮璨)으로, 신자승(申自繩)의 딸인 평산 신씨(平山申氏)를 계실(繼室)로 맞이하여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아버지 남궁익(南宮翼)은 남궁찬의 둘째 아들로, 김인각(金麟角)의 딸인 연안 김씨(延安金氏)와 혼인하여 남궁희(南宮憘), 남궁침(南宮枕), 남궁개(南宮愷)[1517~?] 등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다. 남궁개는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와의 사이에 남궁도(南宮渡), 남궁준(南宮濬), 남궁섭(南宮涉) 등 3남을 두었다. 이후 그의 자손들이 각지로 분거하여 함열 남궁씨 7파(派)를 형성하면서 남궁개는 지평공파(砥平公派)의 파조가 되었다.
[활동 사항]
남궁개는 1540년(중종 35) 시행된 식년시에서 진사 3등 14위에 올랐다.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경기도 광주목 지평 현감이 되었으나, 1580년(선조 13) 하리(下吏)에게 직무를 위임하여 처리한 행동이 문제가 되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지평현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대이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함열 남궁씨 제1 묘역 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