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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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悅南宮氏墓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은선 |
현 소재지 | 함열남궁씨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도봉동 산69-7(N37° 40′ 30.1153″, E127° 01′ 09.1240″)(N37° 40′ 50.7754, E127° 02′ 24.84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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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묘역 |
관련 인물 | 남궁숙(南宮淑)[1490~1553]|남궁침(南宮枕)[1513~1567]|남궁활(南宮活)|남궁익(南宮翼)|남궁희(南宮憘)|남궁개(南宮愷)|정부인(貞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남궁공(南宮公)|남궁제(南宮悌)|남궁니(南宮柅)|남궁치(南宮致)|남궁구(南宮構) |
소유자 | 함열남궁씨 종중 |
관리자 | 함열남궁씨 종중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시대 함열남궁씨 직계의 묘가 집장된 묘역.
[개설]
함열남궁씨 묘역(咸悅南宮氏墓域)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남궁숙(南宮淑)[1491~1553], 형조참판(刑曹參判) 남궁침(南宮枕)[1513~1567] 등을 중심으로 직계 후손의 묘가 모여 있다. 함열남궁씨 묘역은 크게 제1묘역과 제2묘역으로 나뉘어 있다. 함열 남궁씨 제1묘역에는 청풍 군수(淸風郡守) 남궁활(南宮活), 이조참판(吏曹參判) 남궁익(南宮翼), 사섬시 정(司贍寺正) 남궁희(南宮憘), 형조참판 남궁침, 지평 현감(砥平縣監) 남궁개(南宮愷)의 묘가 차례로 있다.
남궁활의 묘에서 위로 올라가면 남궁찬(南宮璨)의 부인인 정부인(貞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와 별제(別提) 남궁공(南宮公)의 묘가 있다. 아울러 왼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한성부 우윤 남궁숙의 묘와 연안 부사(延安府使) 남궁제(南宮悌)의 묘가 있다. 함열남궁씨 제2묘역에는 남궁활의 자손들로 진사(進士) 남궁니(南宮柅),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남궁계의 아들인 박천 군수(博川郡守) 남궁치(南宮致), 무공랑(務功郞) 남궁구(南宮構)의 묘가 차례로 있다.
[위치]
함열남궁씨 제1묘역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번지로 북한산 국립 공원 무수골 매표소를 통과하여 서쪽 방향인 원통사 쪽으로 올라가다 만세재(萬世齋)에서 서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약 15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여 있다. 제2묘역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69-7번지로 지하철 1호선 도봉역 맞은편 무수골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다 도봉 빌라 뒤로 무수골 북쪽 능선부에 북에서 남으로 걸쳐 위치하고 있다.
[변천]
함열남궁씨 제1묘역은 남궁찬의 부인인 평산 신씨와 그 후손들로 16세기부터 형성되었다. 그 후 제2묘역으로 확장되었는데, 제2묘역은 개국원종공신 남궁계의 아들인 남궁치와 손자인 남궁찬, 남궁찬의 증손인 남궁활 자손들의 묘로 15세기 이후 지속되었다.
[형태]
함열남궁씨 묘역의 좌향은 동향이다. 제1묘역 중 가장 선조인 남궁찬 부인 평산 신씨의 묘는 가장 상단에 있다. 한편 남궁찬 묘는 은거하여 지냈던 전라북도 익산군 성당면 갈산리에 위치하여 있다. 평산 신씨의 묘는 묘표, 혼유석, 석상(石床), 향로석, 동자석인, 문석인, 장명등 등을 갖추었다. 묘표는 이수 방부형인데, 개석 뒷면에는 초승달을 가운데 조각하고 주변을 구름무늬로 장식하였다. 비신 앞면 가운데에는 ‘정부인 신씨 묘갈(貞夫人申氏墓碣)’이라고 새겼다.
묘표는 개석 60×18×40㎝이고, 비신 50×16×92㎝ 규모이다. 무수골 입구에는 만세재라는 함열 남궁씨 재실이 있다. 이 외에 아들인 남궁숙과 손자인 남궁침 묘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다. 함열남궁씨 제2묘역에는 가장 상단에 근래 건립한 개국원종공신 남궁계의 제단이 있다. 그 아래로 남궁계의 아들인 남궁치와 남궁활의 자손들의 묘가 있고, 좌우로 여러 무덤들이 산재하여 있다.
[금석문]
조선 시대에 조성된 금석문으로는 평산 신씨의 묘표, 그 아들인 남궁숙의 묘표와 손자인 남궁침의 묘표 등이 있다. 남궁숙의 묘표에는 비신 앞면에 ‘정헌대부 한성 판윤 전라 황해 함경도 관찰사 병마절도사 남궁 공숙 지묘 정부인 완산 이씨 부우 정부인 고흥 유씨 부좌(正憲大夫漢城判尹全羅黃海咸鏡道 觀察使兵馬節度使南宮公淑之墓 貞夫人完山李氏附右 貞夫人高興柳氏附左)’라고 새겨져 있다.
비신 뒷면에는 비신의 입석 연대를 새겨 놓았다. 남궁침 묘표의 비신 앞면에는 ‘가선대부 형조 참판 겸 성균관 대사성 오위도총부 부총관 남궁 공침 지묘(嘉善大夫刑曹參判兼成均館大司成五衛都摠府副總管南宮公忱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그 옆으로는 ‘숭정 후 오십팔 년 을축 칠월 일 현손 숙립(崇禎後五十八年乙丑七月日 玄孫塾立)’이라고 새겨 1685년(숙종 11)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함열남궁씨 묘역은 조선 전기부터 후반까지 조성된 곳으로, 영역은 원래 그대로이다. 그러나 후대에 봉분 호석을 설치하고, 여러 차례 석물을 추가로 배치하여 원형이 많이 변형되었다. 함열남궁씨 종중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울특별시 도봉동 함열남궁씨 묘역은 15세기부터 조성된 고분군(古墳郡)으로, 상설 배치 및 석물의 양식이 서로 유사하다. 즉 묘역 내의 석물은 함열남궁씨 문중만의 공통적인 석물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