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68 |
---|---|
한자 | 玄泳晩 |
영어공식명칭 | Hyun Yeongm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현영만(玄泳晩)[1921~1981]은 1921년 5월 2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무우원(無憂園)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현영만은 1940년 6월 특설강습과 동기생 조형길(趙亨吉)·김병욱(金炳旭)과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기로 뜻을 같이하였다. 이후 이형수(李亨洙)·배환규(裵煥圭)·박찬억(朴讚億)·유성준(兪性濬) 등을 포섭하여 1940년 12월 1일 당시 대봉동에 있던 이형수의 집에서 비밀결사 무우원을 결성하였다.
무우원은 폭력적인 투쟁이 아니라 문화적·경제적인 힘을 길러 독립을 달성하고,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동조동근(同祖同根)의 허구성 폭로와 지원병·공출·징용 등의 강제 동원 거부를 당면 투쟁 지침으로 정하였다. 이를 위해 불교를 믿고 술과 담배를 금하며 조직원끼리는 친목을 두텁게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무우원은 기관지 『무우원』을 발행하였으며, 조직의 약칭으로 ‘M’을 사용하였다. 총칙과 세칙에 따르면 총책임자인 집행위원장 아래 총무부·경제부·과학부·선전부·종교부·문예부·후생부의 7개 부서를 두었다. 조형길이 집행위원장에 선임되었고, 현영만은 총무부장을 맡았다.
현영만은 1941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경산군의 진량공립국민학교 훈도로 근무하면서 무우단 활동을 계속 수행하여 경상남도의 서영수, 충청남도의 김창석, 양산 통도사 승려 윤석주(尹錫柱), 전찬조(田贊祚) 등을 조직원으로 영입하였다.
현영만은 1943년 6월 무렵 무우원의 활동이 발각되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44년 6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출소하였다. 현영만은 1981년 4월 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현영만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