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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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曾龍 |
영어공식명칭 | Kang Jeungry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강증룡(姜曾龍)[?~?]은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 1940년 대구사범학교에서 조직된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무우원(無憂園)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강증룡은 1940년 12월 무렵 일본 도쿄의 한 사설 영어학원에서 수학하던 중 무우원 집행위원장 조형길(趙亨吉)[이명 조소영(趙宵影)]을 만나 무우원의 취지에 공감하고 조직원으로 가입하였다. 그 후 일본 도교 스기나미구[杉竝區]에 있는 강증룡의 숙소는 조형길·최수원(崔壽源) 등 동지들의 모임 장소로 이용되었다.
무우원은 폭력적인 투쟁이 아니라 문화적·경제적인 힘을 길러 독립을 달성하고,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의 낙원을 건설하려는 목적 아래 대구사범학교 재학생 조형길·김병욱(金炳旭)·현영만(玄泳晩)·이형수(李亨洙)·배환규(裵煥圭)·박찬억(朴讚億)·유성준(兪性濬) 등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내선일체(內鮮一體)와 동조동근(同祖同根)의 허구성 폭로와 지원병·공출·징용 등의 강제 동원 거부를 당면한 투쟁 목표로 삼았다. 이에 따라 술과 담배를 금하였고, 조직원끼리 친목을 다지기 위한 여러 방침을 세웠다. 무우원은 기관지 『무우원』을 발행하였으며, 조직의 약칭으로 ‘M’을 사용하였다. 총칙과 세칙에 따르면 총책임자인 집행위원장을 두고 그 밑에 총무부·경제부·과학부·선전부·종교부·문예부·후생부의 7개 부서를 두었다. 강증룡이 속한 일본 도쿄 조직은 조형길의 일본 유학 이후에 결성된 것이었다.
강증룡은 1943년 6월 무렵 무우원 활동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44년 6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