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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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亨吉 |
영어공식명칭 | Cho Hyeonggil |
이칭/별칭 | 조소영(趙宵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920년 - 조형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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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0년 - 조형길 대구사범학교 특설강습과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12월 1일 - 조형길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무우원 결성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6월 20일 - 조형길 무우원 도쿄지부 친목회 개최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6월 - 조형길 일제 경찰에게 체포 |
몰년 시기/일시 | 1943년 6월 - 조형길 사망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6월 16일 - 조형길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조형길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순천 - 북한 평안남도 순천군 |
학교|수학지 | 대구사범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일본 도쿄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무우원 집행위원장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조형길(趙亨吉)[1920~1945]은 1920년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무우원(無憂園)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조소영(趙宵影)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조형길은 1940년 6월 대구사범학교 특설강습과 동기생 김병욱(金丙旭)·현영만(玄泳晩)과 항일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기로 뜻을 같이하였다. 이후 이형수(李亨洙)·배환규(裵煥圭)·박찬억(朴讚億)·유성준(兪性濬) 등을 포섭하여 1940년 12월 1일 당시 대봉동에 있던 이형수의 집에서 비밀결사 무우원을 결성하였다.
무우원은 폭력적인 투쟁이 아니라 문화적·경제적인 힘을 길러 독립을 달성하고,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민족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동조동근(同祖同根)의 허구성 폭로와 지원병·공출·징용 등의 강제 동원 거부를 당면 투쟁 지침으로 정하였다. 이를 위해 불교를 믿고 술과 담배를 금하며 조직원끼리는 친목을 두텁게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무우원은 기관지 『무우원』을 발행하였으며, 조직의 약칭으로 ‘M’을 사용하였다. 총칙과 세칙에 따르면 총책임자인 집행위원장 아래 총무부·경제부·과학부·선전부·종교부·문예부·후생부의 7개 부서를 두었다. 조형길은 집행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조형길은 무우원 결성 뒤 일본 도쿄로 건너가 아사쿠사[淺草]에 있는 불교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조직 확대에 힘써 함경북도 출신 강증룡(姜曾龍)과 평양 출신의 최수원(崔壽源)을 조직원으로 영입하였다. 1943년 1월 3일 강증룡의 숙소에서 일본을 방문한 김병욱과 만나 김병욱을 국내 책임자로 정하고 향후 사업 계획을 협의하였다. 1943년 6월 20일에는 강증룡의 숙소에서 최수원 등과 함께 무우원의 도쿄지부 친목회를 열기도 하였다.
1943년 6월 무렵 무우원의 활동이 발각되어 조형길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44년 6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눈앞에 두고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형길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