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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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範敎 |
영어공식명칭 | Lee Beomgyo |
이칭/별칭 | 이상백(李相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장세윤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범교(李範敎)[1888~1951]는 1888년 7월 27일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과전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중 1919년 3월 8일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 중국과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상백(李相伯)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범교는 1908년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한 뒤 동산병원 의학부에서 교육을 받고 1912년 수료하였다. 대구 중심가에서 의원을 개업하여 운영하던 중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일제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게 되자, 3월 말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이범교는 1919년 4월 초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으며, 국내외 선전 및 시위 활동과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을 실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교통부(交通部)의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7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산하에 ‘연통제(聯通制)’가 시행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와의 비밀 연락망이 조직되었고, 이범교는 7월 16일 경북특파원으로 임명되었다.
이범교는 항일 선전 및 항일 시위운동의 전개, 독립운동 자금 조달,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연락 임무 등을 부여받고 경상북도로 잠입하여 비밀리에 활동하였다. 국내 활동 중 일제 경찰의 추적을 받아 여러 번 체포될 뻔하였으나 위기를 모면한 이범교는 중국 펑톈[奉天]으로 도피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연락원으로서 독립운동가들의 국내외 출입 안내역과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이범교는 1919년 12월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시로 이동하여 배영학교(培英學校)와 병원 설립을 주도하였고, 연해주 지역 한인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계몽·교육하였다. 또한 한인 교민들의 보건위생 향상에 노력하였다. 1921년에는 자유시사변[일명 흑하사변(黑河事變)]을 계기로 시베리아 이만시를 탈출하여 남하한 독립군 지도자 이범석(李範奭)을 배영학교 훈련부장으로 영입하여 함께 독립운동 방법론 등을 논의하고 모색하기도 하였다.
이범교는 광복 이후인 1948년 5월 영천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하였으며, 1951년 12월 29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범교의 공적을 기려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