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53 |
---|---|
한자 | 李宗澤- 妻 朴氏 |
영어공식명칭 | Lee Jongtaek’s wife Parkssi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출생 시기/일시 | 1574년 - 이종택의 처 박씨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592년 5월 - 이종택의 처 박씨 사망 |
출생지 | 묘리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
거주|이주지 | 연호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 |
묘소|단소 | 이종택의 처 박씨 묘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성 |
본관 | 순천(順天)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열녀.
[가계]
이종택의 처 박씨(朴氏)[1574~1592]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아버지는 총관(摠管) 박충후(朴忠後)이다. 이종택(李宗澤)은 하목정(霞鶩亭)을 건립한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이종택의 처 박씨는 1574년(선조 7)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태어났다. 대구로 시집을 와 수성구 연호동에 거주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박씨는 친정에 있었는데, 5월에 왜적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박충후의 가족들은 낙동강 강변에 굴을 파고 피신하였는데, 왜적들이 은신처를 찾아내어 나올 것을 재촉하였다. 왜적들은 이종택의 처 박씨와 동생 박휘양(朴輝陽)이 달아날 것을 염려하여 두 사람을 머리카락으로 묶어 강 언덕에 두고 굴속으로 들어가 물건을 뒤졌다. 왜적들이 없는 틈을 타서 이종택의 처 박씨와 박휘양은 함께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이종택의 처 박씨는 왜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박휘양과 서로 약속하기를 “만약에 왜적을 만나면 함께 죽어 몸을 더럽히지 말자”라고 하였는데, 마침내 그의 말과 같았으니 사람들이 모두 탄식하였다고 한다. 구사맹(具思孟)[1531~1604]은 추모시에서 “뜻밖의 난리에 아름다운 모습을 숨겼는데, 굴에서 잡혀 나와 머리카락으로 묶인 창황한 때에, 깊은 강물에 뛰어들어 함께 욕됨을 면하였으니, 꽃다운 사연이 천년토록 강 언저리에 가득하리라[離無計掩明姿, 驅出蒼黃結髮時. 躍入深淵同免辱, 英風千載滿江湄]”라고 하였다. 서사원(徐思遠)[1550~1615]의 『낙재일기(樂齋日記)』 1592년 5월 18일 기록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묘소]
이종택의 처 박씨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594년 1월 15일 순찰사 한효순(韓孝純)이 장계(狀啓)를 올려 이종택의 처 박씨에게 정려(旌閭)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