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12 |
---|---|
한자 | 烈女 孝婦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구본욱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거나 시부모에게 효도한 여성.
[대구의 열녀·효부]
대구 지역의 열녀(烈女)에 대한 기록으로는 김내정(金乃鼎)의 처 서씨(徐氏)가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편에 “낭장(郎將) 김내정의 처 서씨의 정문(旌門)이 부내(府內)의 용덕리(龍德里)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열녀」 조에는 “나이 24세에 김내정이 죽었는데, 절개를 지켜 두 남편을 섬기지 않았다. 태종 때 정려(旌閭)하고 복호(復戶)하였다.”라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다.
1768년(영조 44)에 편찬된 『대구읍지(大丘邑誌)』「열녀」 조에는 김내정의 처 서씨와 이종택(李宗澤)의 처 박씨(朴氏), 박씨의 여종 온대(溫代), 이하주(李廈柱)의 처 이씨(李氏), 구정리(具鼎履)의 처 이씨(李氏), 구귀징(具龜徵)의 비첩(婢妾) 자미(者未), 최태상(崔太尙)의 처 조소사(趙召史)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효부(孝婦)」 조에는 서시립(徐時立)의 어머니 강씨(姜氏), 박인홍(朴仁弘)의 처 이소사(李召史)가 기록되어 있다.
1832년(순조 32)에 편찬된 『대구부읍지(大邱府邑誌)』「열녀」 조에는 도필상(都必祥)의 처 신씨(申氏), 최흥락(崔興洛)의 처 류씨(柳氏), 박지운(朴之運)의 처 성씨(成氏), 이성후(李成厚)의 처 윤씨(尹氏), 도필해(都必海)의 처 최씨(崔氏), 이항언(李恒彦)의 처 홍성(洪姓), 정광일(鄭匡一)의 처 송씨(宋氏)가 추가되어 있다.
열녀와 효부는 이후에도 계속 첨가되어 2007년에 발간된 『대구향교지』에는 채명휴(蔡命休)의 처 평해황씨(平海黃氏), 김규환(金圭煥)의 처 파평윤씨(坡平尹氏), 우용기(禹龍基)의 처 능주구씨(綾州具氏), 김수용(金洙龍)의 처 조태이(趙泰伊), 이만세(李萬世)의 처 동래정씨(東萊鄭氏) 등이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효녀는 기록되지 않았다.
대구 지역 열녀의 행적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남편 사후 평생 동안 수절한 경우, 남편이 죽자 굶어죽은 경우, 왜적으로부터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끊은 경우, 남편이 병이 들었을 때 단지(斷指)하여 정성껏 보살핀 경우, 남편이 익사하자 같이 빠져 죽은 경우, 남편이 이웃 사람에게 맞아 죽자 복수한 경우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남편이 죽자 자결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