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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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圭煥- 妻 尹氏 |
영어공식명칭 | Kim Kyuhwan and he’s wife Yoonssi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본욱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 김규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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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노곡동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
거주|이주지 | 노곡동 -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
성격 | 효자|효부 |
성별 | 남성|여성 |
본관 | 김녕(金寧)|파평(坡平) |
[정의]
개항기 대구 출신의 효자와 효부.
[가계]
김규환(金圭煥)[1868~?]의 본관은 김녕(金寧)이며, 아버지는 김정헌(金禎憲)이다. 부인 윤씨(尹氏)[?~?]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태호(尹泰鎬)이다.
[활동 사항]
김규환은 1868년(고종 5)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늘 맛난 음식을 마련하여 부모에게 드렸으며, 모든 일을 항상 부모와 상의하고 행하였다. 부모기 병이 들자 곁을 떠나지 않고 약시중을 들었으며, 팔공산에 들어가 자신의 몸으로 부모님의 목숨과 대신하기를 여러 번 빌자 부모의 병환이 차도가 있어서 10여 년을 더 살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가 사망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부인인 파평윤씨 또한 정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특히 선조 제향에 정성을 다하고 종친과 돈독하게 지내는 데도 모범이 되었다. 남편이 악질에 걸리자 아무리 먼 곳이라도 가서 약을 구하여 치료하였다. 그러나 효험이 없자 집 후원(後園)에 칠성단(七星壇)을 쌓아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기를 칠팔 년 행하니 남편의 병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김규환과 처 윤씨에게 당시 유림의 중요 조직이었던 공부자성적도 오륜행실중간소(孔夫子聖蹟圖五倫行實重刊所)에서 표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