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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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少年保護所 |
이칭/별칭 | 대구경찰서 소년보호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설립 시기/일시 | 1926년 10월 - 대구소년보호소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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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32년 11월 19일 - 대구소년보호소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에서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으로 이전 |
최초 설립지 | 대구소년보호소 -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 |
주소 변경 이력 | 대구소년보호소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
성격 | 사회보호시설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고아를 수용한 기관.
[설립 목적]
대구소년보호소는 소매치기, 구두 절도 등 치안을 불안하게 하는 고아를 교화하고자 설립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거 불명인 고아도 강제수용하였다.
[변천]
대구소년보호소는 1926년 10월 대구부 원대동[현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에 설치되었다. 대구경찰서장의 감독 하에 설치된 대구소년보호소의 재원은 이장우(李章雨) 등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운영되었으나 항상 경비와 시설이 부족하였다. 대구경찰서는 순사 숙소와 경비를 활용하여 해소하고자 하였지만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대구소년보호소는 장소와 설비 부족으로 확충이 시급하여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신암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토지 약 7,464㎡를 빌려 총 공사비 4,000원을 들여 신축하고 1932년 11월 19일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낙성식에는 경상북도지사 이하 관민 유지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소년보호소는 양송이를 재배하여 고아를 자립시키고자 하였다.
[현황]
일제는 조선총독부 또는 일왕의 하사금 명목으로 각 지방에 있는 사회단체에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관리하였다. 1935년 2월 일왕이 전국에 산재한 68개 사회단체에 지원금을 지급할 때 대구에서는 대구소년보호소, 나병원, 대구상성회, 경북구제회, 천주교수녀원 부설 여자 고아원이 받았다.
[의의와 평가]
대구소년보호소는 일제가 직접 관리하는 대표적 기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