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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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二十四部隊 學兵- 戰爭動員 政策 反對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44년 대구 24부대의 학병들이 일제의 전쟁동원 정책에 반대하며 일으킨 전시체제 거부 운동.
[역사적 배경]
대구 24부대의 정확한 명칭은 ‘경북방위군 제24부대’로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연합군의 한반도 상륙 대비 군사작전 수행을 위하여 보병80연대를 개편한 부대였다. 일제는 1938년 지원병 형태로 조선 청년을 전쟁에 동원한 이래 1943년에 ‘조선인 학도 육군 특별지원병’제도를 강행하였다. 그 뒤 1944년에 강행한 징병제를 포함하면 일제는 패망할 때까지 20여만 명의 조선 청년을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내몰며 희생을 강요하였다.
[경과]
1944년 1월 20일 대구 24부대에 경상남북도 출신의 학병 600여 명이 강제 입대하였다. 1944년 1월 30일 무렵에는 강제 입대 당한 600여 명 중 제3대대 3중대의 27명 정도만이 대구 24부대에 남아 있었고, 대부분은 중국 북부 지역으로 보내졌다.
대구 24부대에 남겨진 학병들은 일제의 전쟁동원에 저항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학병 가운데 문한우(文漢雨), 권혁조(權赫朝), 권성훈(權性薰), 김복현(金福顯), 권중혁(權重赫), 김이현(金而鉉) 등이 중심이 되었다. 학병들의 전쟁 동원 반대 계획은 첫째, 반일사상 고취와 징병 병력의 탈출 지원, 둘째, 탄약고 폭파와 무기 탈취를 통한 일본군 몰살, 셋째, 독극물을 음식물에 투입하여 일본군 제거, 부대 탈출 등이었다.
계획 중 세 가지를 시도한 끝에 1944년 8월 7일을 기하여 대구 24부대를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실제 탈출은 1944년 8월 8일에 이루어졌다. 대구 24부대 하수구를 이용하여 탈출에 성공한 문한우, 권혁조, 권태용, 김복현, 권중혁, 김이현 등은 지리산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나 계획을 변경하여 팔공산으로 들어갔다.
[결과]
대구 24부대 학병의 탈출 사실이 알려지자 대구 24부대 및 경찰, 행정관서 등이 연합하여 팔공산으로 포위망을 좁혔다. 문한우와 권혁조가 안동을 거쳐 서울로 잠입하기 위하여 역에 나왔다가 일제 관헌에 체포되었다. 권중혁과 권태용은 팔공산에서 가까운 신녕(新寧)에 숨었다가 일제 관헌에 체포되었다. 김복현과 김이현은 검거망을 피하여 서울로 잠입하였다. 김이현은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 이후 귀국하였다.
1944년 12월 조선군 임시군법회의에서 권중혁과 문한우는 징역 5년, 권태용과 권중혁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대창(大倉) 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문한우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권태용은 1980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권중혁은 2005년 건국포장을 받았고, 권혁조는 2007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대구 24부대 학병들의 전쟁동원 정책 반대 운동은 일제의 전시체제에 저항하며 민족의 독립운동을 고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