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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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漢雨 |
영어공식명칭 | Moon Han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문한우(文漢雨)[1921~2000]는 1921년 1월 22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서 태어났다. 1944년 강제 징집되어 대구 제24부대[경북방위군 제24부대]에 배치되었으나, 동지들과 함께 부대를 탈출하여 일제에 저항하였다.
[활동 사항]
문한우는 1943년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학생들을 대상으로 항일의식을 고취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언도받았다. 1944년 1월에는 학병으로 강제 징집으로 대구 24부대에 배치되었다. 1월 30일 학병들 중 제3대대 3중대의 27명 정도만 대구 24부대에 남겨졌고, 대부분은 중국 북부 지역으로 보내졌다. 이때 대구에 남은 문한우는 권태용(權泰鏞)·권혁조(權赫朝)·권성훈(權性薰)·김복현(金福顯)·권중혁(權重赫)·김이현(金而鉉) 등과 함께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에 반대하고 저항할 방도를 모색하였다.
문한우 등은 반일사상 고취와 징병 병력의 탈출 지원, 탄약고 폭포와 무기 탈취를 통한 일본군 몰살, 독극물을 음식물에 투입하여 일본군을 제거하고 부대를 탈출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1944년 8월 8일 권태용은 동지들과 함께 하수구를 통하여 부대를 탈출한 뒤 대구 팔공산으로 들어가 일제에 대한 저항을 이어 가려 하였다.
학병들의 탈영 사실이 알려지자 대구 24부대 및 경찰·행정관서 등이 연합하여 문한우 등을 추격하였다. 문한우는 권혁조와 함께 포위망을 뚫고 서울로 잠입하려 하였으나 역에서 일제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1944년 12월 조선군 임시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대창(大倉)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출소하였다. 문한우는 2000년 5월 3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문한우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