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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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蒙古將帥射場址 |
영어음역 | Monggo Jangsuwa Sajangteo |
영어의미역 | A Mongol Warrior and the Site Where He Fell |
이칭/별칭 | 「처인성 싸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종수 |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서 처인성의 사장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5년에 출간한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용인군지』에도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채록되어 있으며, 『용인 남부지역의 구비전승』에는 「처인성에 일어난 일화」란 재목으로 채록되어 수록되었다.
[내용]
몽고는 고려 정부가 강화도로 들어가 적극적으로 항쟁할 기미를 보이자, 살리타를 장수로 2차 침공을 감행하였다. 살리타는 중원경을 목표로 진격하다 처인성을 지나게 되었다. 처인성에는 선승 김윤후가 진위현 남쪽에 있는 백현원의 한 절에서 시무하다 적군의 침입을 듣고, 승병과 의병을 규합하여 처인성의 토축을 높이고 목책을 세우며, 농기구를 거두어 무기를 대신하여 싸움에 대비하였다.
살리타가 이끄는 부대는 수천 명의 기병을 앞세운 최정예 부대였다. 이에 비하여 김윤후의 부대는 초라한 오합지졸에 불구했으나 죽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굳은 의지로 방비하고 있었다. 살리타는 항복하라는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자 울화통이 터져 공격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군사들만 죽어갈 뿐 성 하나를 점령하지 못하자, 선두에 서서 공격하였다.
이때 김윤후는 각궁의 화살로 살리타의 안면을 적중시켰다. 말에서 떨어진 살리타는 몽고 기병대의 말굽에 채여 시신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이를 본 고려 의병들은 의기충천하여 사기가 떨어져 후퇴하는 몽고군을 무찔러 퇴각시켰다. 그후 김윤후는 상장군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본연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몽고 장수가 죽은 처인성과 북쪽 안산 사이를 사장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몽고 장수와 사장터」는 몽고 장수 살리타가 고려의 승장 김윤후의 화살을 맞고 죽은 자리라고 하여 사장터가 되었다는 유래담이다. 역사적 사실이 지명담으로 바뀌어 전승되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