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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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Baedureongchi |
영어의미역 | Belly Band for a Baby |
이칭/별칭 | 배두렁이,두렁치마,두렁이,두랭이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집필자 | 박선영 |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어린아이의 배와 아랫도리에 둘러주는 치마같이 만든 옷.
[개설]
상·하의(上下衣)의 구분이 없는 형태이지만 하의로 볼 수 있다. 고기1동에서는 ‘두렁치’라고도 불렀다.
[연원]
조선시대 고종 때의 『궁중발기(宮中發記)』라는 책에는 왕자의 삼칠일 의대(衣襨)에 누비두렁이 기록이 남아 있다.
[형태]
어린아이의 가슴 부위에서 무릎이나 허벅지 정도까지 앞치마와 비슷한 모양으로 허리에 주름을 잡고 끈이 달린 형태이다. 옷감을 온 폭으로 길을 마름질하고 양쪽에 끈을 달아 허리에 둘러 입혔다.
남자아이들은 3~4세 이후에 아랫도리를 벗겨서 기르거나 밑이 터진 바지 형태인 풍차바지를 입히기도 했지만 여자아이들은 반드시 배두렁이를 입혀 아랫도리를 가려 주었다. 폭을 좁게 하여 배와 아랫도리를 덮어 주었기 때문에 누워 있어도 등이 편안하고 배는 따뜻했으며 기저귀를 갈아줄 때 편리하였다. 아이들 옷은 자주 세탁해야 했으므로 주로 흰색으로 해 입혔다.
[용도]
생후 백일이 지난 후부터 3~4세까지 입혔던 옷으로, 밑이 터진 치마 형태라 기저귀를 차거나 용변을 보는 데 편리하였다. 겨울에는 보온의 효과가 있었으며, 여름에는 통풍이 잘 되어 땀띠를 막아 주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옛날에는 오늘과 같이 다양한 용도의 옷이나 섬유류가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보온용으로 만들었다. 주로 무명이나 광목, 모시 등으로 만들었으며, 솜을 두어 누비기도 했고 융이 나온 이후에는 주로 흰 융으로 많이 만들었다. 형편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드물게 명주로 만들어 입히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집안에서는 어른들이 입던 헌옷을 재활용하여 만들기도 했다. 대부분 겹으로 만들어 솜을 두고 누벼서 따뜻하게 입히거나 여름에는 모시를 사용하여 홑으로 시원하게 입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