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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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春植 |
영어음역 | Park Chuns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진갑 |
[정의]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의병.
[활동사항]
박춘식은 경기도 용인군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1907년 7월 김봉기 의병부대에 들어가 군자금 확보와 의병 모집 활동을 벌였다. 그는 동료 의병과 함께 광주·양천·지평·가평·춘천·횡성·화천·양구 등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양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가평 실운리에 있는 명례궁(明禮宮) 사음(舍音) 집에서 백미 50석을 군량미로 확보하고 지평군에서는 군자금 200원을 확보하였다. 한편 1908년 유태수·송금봉에게 의병되기를 권유하고, 홍금만에게도 활동을 재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박춘식은 유태수·송금봉과 함께 김봉기 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군수품 및 군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피체되고 말았다. 1908년 6월 17일 경기재판소에서 종신 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