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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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枝面示威運動 |
영어음역 | Suji-myeon Siwi Undong |
영어의미역 | Independence Movement in Suji-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수현 |
성격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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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19년 3월 29일 |
종결연도/일시 | 1919년 3월 30일 |
발생(시작)장소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
관련인물/단체 | 이덕균(李德均)|안종각(安鍾珏)|최우돌(崔又乭) |
[정의]
1919년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역사적 배경]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수지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경과]
3월 29일 고기리 구장 이덕균은 동리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시위에 나섰다. 시위가 전개되는 동안 동천리 주민 200여 명이 합세하였다. 고기리와 동천리의 연합 시위대는 풍덕리를 거쳐 면사무소 앞에서 연좌 시위를 벌였다.
이후 시위대는 읍삼면 마북리로 향하던 중 일본 헌병에 의해 강제 해산당했다. 이어 3월 30일에는 수지면과 읍삼면 주민이 합세하여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가 강제 해산당했다.
[결과]
일본 헌병의 발포로 안종각과 최우돌(崔又乭)이 피살되었고, 검거된 16명은 경성지방법원으로 이송되어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시위를 주도한 이덕균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