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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고지 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130
한자 151高地戰鬪
영어음역 Baegosibil Goji Jeontu
영어의미역 Battle of Hill 151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951년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지도보기

[정의]

1951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서 터키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개설]

1951년 1월 25일을 기점으로 미 제8군사령관 릿지웨이 장군은 UN군이 중공군에 대하여 본격적인 반격 작전을 펴기 위하여 한강을 향해 북진하도록 명령했다. 이른바 선더볼트(Thunderbolt) 작전이었다. 이 작전에 참여했던 터키군이 151고지에서 백병전으로 중공군 474명을 사살하며 고지를 점령했다.

[역사적 배경]

1951년 1월 12일을 전후하여 중공군의 3차 공세에 의한 위기가 수습됨에 따라 국군과 UN군은 평택-삼척을 연결하는 선에서 안정을 되찾았고, 부대를 수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UN군을 추격할 것 같았던 중공군과 북한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중공군의 위치를 확인하고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1951년 1월 15일부터 1개 연대 규모의 위력 수색을 실시했다. 이를 통하여 보급과 화력 면에서 중공군의 취약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한 UN군 측은 릿지웨이 장군의 지휘 하에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게 되었다.

[경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평택-제천 선에서 저지하고 재반격 작전을 실시할 때, 1950년 10월부터 이미 한국에 투입되었던 터키군 제1여단은 김량장리 및 151고지를 목표로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중공군도 강력한 방어 진지를 구축하여 결전을 시도하고 있었다.

터키 제1여단은 유엔군에 각종 지원 화력과 근접 항공 지원을 요청하여, 1951년 1월 25일 06:00에 151고지와 김량장리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 돌격을 실시하여 1월 26일 중공군의 강력한 방어 거점인 김량장리와 151고지를 확보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전투에서 터키 여단은 약간의 손실을 입은 반면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군우리 전투에서 패배한 터키군의 명예를 회복한 전투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3.11 지역 수정 지역 수정 : 처인구 김량장동 -> 기흥구 보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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