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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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洛鎔 |
영어음역 | Jeong Nakyong |
이칭/별칭 | 경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안장리 |
성격 | 문신|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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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 |
성별 | 남 |
생년 | 1827년 |
몰년 | 1914년 |
본관 | 연일 |
대표관직 | 궁내부특진관 |
[정의]
조선 말기 용인 출신의 문신.
[개설]
정낙용은 조선 철종 대부터 일제시대까지 활동한 문신 관료로, 철종 대에 관료생활을 시작하여 일제시대에는 남작의 작위까지 받은 친일파이다. 경기도 용인시 모현읍 갈담리 갈월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가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경구(景龜). 방어사(防禦使) 정인기(鄭寅基)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855년(철종 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으며, 이후 사복내승(司僕內乘)·수안군수(遂安郡守)·태안군수(泰安郡守)·태안부사(泰安府使)·전라도좌수사(全羅道左水使)가 되었다.
1867년에 우부승지(右副承旨)가 되었고 죽산부사(竹山府使)·전라도수사(全羅道水使)·남양부사(南陽府使)·통제사(統制使)·부총관(副摠官)·병조참판(兵曹參判)·좌포장(左捕將)·후영사(後營使)·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전환국총판(典圜局總辦)·공조판서(工曹判書)·형조판서(刑曹判書)·강화유수(江華留守)·한성판윤(漢城判尹) 등을 거쳤다.
1896년 중추원의관의장대변(中樞院議官議長代辨)·시종원경(侍從院卿)·농상공부대신(農商工部大臣)·탁지부대신서리(度支部大臣署理)·중추원의장(中樞院議長)·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등을 역임하였으며, 1910년 일제가 병탄할 때 일본으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