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구낙서(具洛書)[1882~?]는 경기도 양주군 상동면 묵동[현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으로 추정]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1908년(순종 2) 당시 27세였으므로, 이로 미루어 1882년(고종 19)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구낙서는 박순근(朴順根)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덕현 등과 함께 경성...
-
1919년 3월 27일과 28일에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현 백석읍]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백석면 3·1 만세 운동을 주도한 것은 구장인 안종규였다. 만세 운동이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구장[이장]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일제는 1914년 면제를 개편하면서 식민지행정 말단 기구로서 면제를 확립하였으나, 리 단위의 향촌 사회는 전통의 면리제의 질서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
1919년 3월 1일부터 약 2개월 동안 경기도 양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양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전까지 지역민의 동조와 호응 속에서 무장 의병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고장이다. 특히 임진강과 한남정맥의 전략적 지세와 활발한 의병 활동으로 1907년 전국의 의병 부대가 연합하여 13도 창의대진소를 결성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펼쳤을 때 본부...
-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경기도 양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일으킨 국권 회복 운동. 의병 운동은 1894년 발발한 갑오 농민 운동 세력을 기반으로 하여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봉기한 이후 20여 년간 전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과 투쟁의 강도가 강화되었다. 군대 해산 이전에는 이인영(李麟榮)·최익현(崔益鉉) 등 지방의 명망 있는 유생 의병장이 의병 운동을 주도하면서 반일 항전을 촉...
-
1919년 3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운동. 경기도 양주 지역은 의병 운동의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국권 회복을 위한 주민들의 역사적 인식이 강한 지역이었다. 점차 격렬하게 확산되고 있던 서울의 3·1 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1919년 3·1 운동 초기부터 만세 운동에 대한 사발통문이 나도는 등 독립 만세의 기운이 일...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범(重凡), 호는 의암(毅庵). 양촌공파(陽村公派) 21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의병 정인태(鄭寅泰)이며, 아버지는 정두환(鄭斗煥)이다. 어머니는 풍천 임씨(豊川任氏)이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정용대(鄭用大)[1882~1910]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경신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정제환(鄭濟煥)[1878~1956]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일제의 침략이 더욱 심해지자 정제환은 연기우(延基羽) 의병 부대에 들어가 경기도 연천과 삭녕[현 경기도 연천군 북부 지역] 일대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삭녕군 서면에서 동료 의병 수십 명과 함께 포목상으로부터 포목 수십 점을 확보하였으며,...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신(敬信), 호는 송은(松隱). 아버지는 성균관교관 정인식(鄭寅植)이다. 정충환(鄭忠煥)[1888~1962]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의병 활동 당시의 주소지는 서울 동부 연화방 39통 6호[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였다. 1907년(순종 1) 영춘[현 충청북도 단양]에서 의거를 일으켰으며, 1908년 음력 5월...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조용은(趙鏞殷), 자는 경중(敬仲), 호는 소앙(素昻), 별호는 아은(亞隱)·소해(嘯海)·한살임(韓薩任)·아나가위후인(阿那伽餧後人).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 남동...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1420~1489]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이고, 남동생은 조용한(趙鏞漢)·조용원(趙鏞元)이며,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주(趙鏞周)[1889~1937]는 경...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구심(求心).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남동생은 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조용한(趙鏞漢)·조용원(趙鏞元)이고,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하(趙鏞夏)[1882~1937]는 경기도 양주군...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이고 남동생은 조용원(趙鏞元),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조용한(趙鏞漢)[1894~1935]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경기도 양평 출신이다. 조인환(曺仁煥)은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농민을 규합하여 의병 부대를 편성한 뒤 경기도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에는 권준(權俊)·왕회종(王會鍾)·연기우(延基羽) 등 많은 의병 부...
-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조선인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개되었다. 3월 27일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연곡리[현 양주시 백석읍 연곡리]에서도 안종규(安鍾奎)·안종태(安鍾台)·김대현(金大鉉)·이사범(李士範) 등이 주도한 만세 시위가 일어났는데, 당시 농사를 짓던 조필선(趙弼善)도 함께 참여하여...
-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종교인.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중(子中), 호는 월당(月塘). 아버지는 행연서도찰방(行延曙都察謗) 최영오(崔永五)이며, 친아버지는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 최영칠(崔永七)이다. 부인 김씨는 일찍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름을 ‘주신을 믿는다’는 의미의 김주신(金主信)으로 바꿨다고 한다. 슬하...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추삼만(秋三萬)[1880~1910]은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현 양주시 회암동] 출신으로, 이담면 하봉암리[현 동두천시 하봉암동]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정미7조약을 강요하여 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추삼만은 같은 해 8월 황재호(黃在浩) 의병 부대에 들어가...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형(季馨), 호는 왕산(旺山).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이고,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이다. 4형제 중 막내로, 형은 허훈(許薰)[1990년 애국장 추서]·허신(許藎)·허겸(許兼)[1991년 애국장 추서]이다. 자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허학·허영·허준·허국이다. 허위(許蔿)의...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순일(黃順一)[1865~?]은 포군 부장(砲軍部長)을 지냈다. 1904~1905년경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로 이사하였으며, 1907년 9월 황재호(黃在浩)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양주를 비롯하여 적성, 포천, 가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2월에는 양주 출신의 의병 홍희영(洪喜永)을 포함하여 40여 명의 의병을...
-
개항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병. 황재호(黃在浩)[1872~?]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복무하던 중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적성군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권득수(權得洙)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활동하였다. 얼마 후 권득수 부대를 흡수 통합하여 양주·파주·가평·영평 일대에서 양주 출신인 추삼만(秋三萬)·전순만(全順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