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978 |
---|---|
한자 | 趙鏞漢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만용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10월 4일 - 조용한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음력 12월 20일경 - 중국 상하이로 망명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1921년 - 군자금 모집 활동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됨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6월 6일 -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음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5월 - 중국 상하이로 망명 |
몰년 시기/일시 | 1935년 11월 15일 - 조용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
활동지 | 중국 베이징 |
활동지 | 중국 상하이 |
묘소 |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인 조려(趙旅)의 17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성룡(趙成龍)이고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다.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다. 형은 조용하(趙鏞夏)·조소앙(趙素昻)·조용주(趙鏞周)이고 남동생은 조용원(趙鏞元), 여동생은 조용제(趙鏞濟)이다.
[활동 사항]
조용한(趙鏞漢)[1894~1935]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12월 20일경 김홍제·오인영(吳麟泳)과 함께 독립군 자금을 모집한 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였다. 조용한은 완구용 권총 1정을 구입한 후 만주에 있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명의의 인장을 조각하여 군자금 영수증을 위조하고, 수원·안성·진위[현재의 평택] 등지의 부호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오인영을 만나러 가던 중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5일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령 위반 및 강도 예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8년 5월 다시 중국 상하이로 도항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외교총장인 친형 조소앙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남면 황방리에 위치해 있다. 조용한의 묘소가 있는 곳에는 1984년 삼균학회에서 의관장으로 만든 조소앙의 묘소와, 조용주·조용하의 묘소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