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80
한자 金煜
이칭/별칭 백암(栢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 2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7년연표보기 - 김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0년 - 김욱 무과에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 김욱 사망
활동지 쌍령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동북쪽 쌍고개
묘소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세제단(歲祭壇) -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지도보기
성격 무관|의병
성별
대표 경력 증 주부(主簿)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이자 의병.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백암(栢庵). 고려 말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김성단(金成丹)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진고(金振古)이고, 형은 김엽(金燁)이고, 동생은 김찬(金燦)이다.

[활동 사항]

김욱(金煜)[1587~1637]은 1587년(선조 20) 경상도 의성에서 태어났다. 형제들과 함께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고 지냈는데, 동네에서 전쟁놀이를 할 때에도 병진을 만들어 병법에 따라 하였다. 장성해서는 용감하고 씩씩한 기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기사(騎射)에 능하였으며, 학문에도 능하여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삼형제가 함께 급제하였다. 일찍이 형제가 모두 무과에 등제되었기에 마땅히 국가를 위하여 공을 세우고,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죽음으로 이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당시 소식을 듣고 삼형제는 의병을 일으켜 적을 맞으러 가던 중 조령(鳥嶺)에서 강화(講和)의 소식을 듣고 귀향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의병을 일으켜 종군(從軍)하였다. 쌍령(雙嶺)에 이르러 오랑캐를 맞아 전투하였다. 이때 오랑캐 수십 명을 죽이고 군마(軍馬)를 탈취하는 등의 전과(戰果)를 올렸으나, 1637년(인조 15) 1월 3일 두 형제와 함께 전사했다. 김욱 삼형제의 장렬한 전사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주부(主簿)로 추증했으며, 다음해 김엽에게는 훈련원 첨정(訓鍊院 僉正)으로 가증(加贈)하였다. 아버지 김진고에게는 만포사(滿浦使)의 벼슬을 내렸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욱은 순국(殉國) 이후 공이 인정되어 주부로 증직되었다. 1726년(정조 20)에 묘가 있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토리에 세제단(歲祭壇)[정곡사(正谷祠)]을 창건하여 김엽, 김욱, 김찬 등의 삼형제를 배향하였는데, 삼충사(三忠祠)라고도 한다. 현재 정곡사 비각(碑閣) 내에는 회병(晦屛) 신체인(申體仁)이 찬한 ‘삼열사 세제단비(三烈士歲祭壇碑)’가 있다. 또한 정조의 명으로 작성한 『존주록(尊周錄)』에도 삼형제의 이름이 있다.

[저술 및 작품]

김엽·김욱·김찬의 실기인 『삼충실기(三忠實紀)』가 전해오고 있다. 간행 연도와 편집자는 알 수 없으나 책머리에 이익운(李益運)[1748-1817]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1800년대 초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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