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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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자위군.
[개설]
의병(義兵)이란 유사 시 자발적으로 일어나 조직된 민병을 말한다. 나라의 소집이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직한 것이므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기본적인 무기나 군량 등을 스스로 충당해야 했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역사적 배경]
의병은 한국사의 전 시기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 발생한 임진왜란(壬辰倭亂), 정묘호란(丁卯胡亂), 병자호란(丙子胡亂) 등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조선 시대 의성]
조선 시대 의성 지역은 의성현(義城縣)과 비안현(比安縣)을 비롯하여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인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의 속현인 다인현(多仁縣), 용궁현(龍宮縣)의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 의성 지역 의병 활동]
의병 활동은 향촌 지배 질서를 유지하고 여론을 형성하던 재지 사족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의성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 나라에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의병을 모집하여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시기 의병 활동]
의성은 일본군의 북상로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직접적인 피해가 크지 않은 편이었으나, 상주가 함락되면서 일본군이 주변에 출몰하기 시작하자 이를 격퇴하기 위해 의병이 조직되었다.
의성의 대표적 의병 활동으로는 의성 김씨 가문의 김치중(金致中)[?~1592]이 중심이 된 건마산(乾馬山)에서의 전투와 가토 기요마사의 공격을 저지한 화장산성(花藏山城)의 전투가 대표적이다. 건마산 전투의 경우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패배하였으나, 화장산성에서의 전투는 적의 공략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고, 후방을 교란하는 데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이 밖에 의성 출신으로 임진왜란 시기 활동한 인물로는 영천 이씨 가문의 이광준(李光俊)[1531~1609], 아주 신씨 가문의 신지제(申之悌)[1562~1624], 안동 김씨 가문의 김사원(金士元)[1539~1602]·김사형(金士亨)·김사정(金士貞) 형제를 비롯하여 김희(金喜), 안동 권씨 가문의 권희순(勸希舜)[1548~1598], 변세임(卞世琳), 박사숙(朴嗣叔), 김응하(金應夏), 김응주(金應周), 박광춘(朴光春), 오득심(吳得心), 오계방(吳啓邦), 정몽열(丁夢說), 정호(鄭瑚) 등이 있다.
[정묘호란·병자호란 시기 의병 활동]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경우 전투가 벌어진 곳이 한반도의 북부와 중부였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의성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의성 지역의 각 가문에서는 의병을 모집하여 조령(鳥嶺)과 쌍령(雙嶺)에서의 전투에 참여하였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가문과 인물은 다음과 같다. 영천 이씨 가문의 이민성(李民宬)[1570~1629], 아주 신씨 가문의 신적도(申適道)[1574~1663]·신달도(申達道)[1576~1631]·신열도(申悅道)[1589~1647] 삼형제, 안동 권씨 가문의 권수경(權守經)[1584~1659], 김해 김씨 가문의 김득민(金得民)[1585~1637]과 아들 김호영(金鎬榮), 의성 김씨 가문의 김엽(金燁), 김욱(金煜), 김찬(金燦) 삼형제 등이다. 이 밖에 이사운(李士雲), 오자립(吳自立), 손창서(孫昌緖), 김결(金潔), 김경발(金慶發), 이사운(李思雲), 이시백(李時白) 등이 목숨을 잃었고, 김광악(金光岳), 박몽거(朴夢琚), 박효순(朴孝純), 김옥(金鈺), 김협(金鋏) 등이 전투에 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