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376 |
---|---|
한자 | 三汾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삼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개척 당시 주위 세 곳에서 물이 많이 솟아오르므로 삼분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유명한 고분이 세 군데가 있어서 삼분이라 하기도 한다. 뒷날 세 곳의 물줄기를 잡아서 도관 저수지, 삼풍 저수지, 용천 저수지를 만들었다. 비릿재는 삼분에서 달제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길손들이 산적들의 습격을 받아 많은 사람이 죽어 피 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솔밑은 조선 후기 김재호(金在浩)가 개척하였으며 솔숲[송림] 아래 위치하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새동리는 조선 시대 추병진(秋炳鎭)이 개척하였는데 삼분 동쪽으로 새로 이룬 마을이라는 뜻으로 오늘까지 동리(東里)라고 불리우며, 섬들은 박재범(朴齋範)이 개척하였고 들 가운데 외로이 떨어진 섬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송(南松)은 임봉명(林鳳命)과 배헌구(裵獻九)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당시 마을 남쪽에 큰 소나무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남송이라 한다.
신기(新基)는 박경진(朴京鎭) 삼형제가 정착하였는데 새로 터전을 잡았다 하여 샛터, 신항(新項)은 김학현(金學鉉)이 선산에서 옮겨와서 정착하였는데 뒷산이 황새 목과 같다 하여 새미기라 하였다. 신동(新洞)은 이규석(李圭錫)이 삼분동에서 이주하였으며 길 옆 주막이 있어 산주막이라고도 하였고, 조산들(造山들)은 삼분동의 앞이 너무 트여 앞을 가리기 위해 인력으로 산을 조성하여 나무를 심었다 하여 조산들이라고 칭하였다.
[형성 및 변천]
신라 시대에는 상주군 다인현에 속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밀성군 다인현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예천군 다인현에 속하였고 1906년 비안군 현동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송동과 운곡동, 용강동, 신주동, 신항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다인면 삼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거하여 삼분리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산간 지역에 있으나, 낙동강이 가까워 비교적 평야가 많은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높이 460m의 문암산이 있고 그 능선을 따라 용천 저수지, 도관 저수지, 남송 저수지 등의 많은 저수지에서 지류가 흘러내리고 있다. 능선 남쪽으로 논과 밭, 과수원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용천 저수지와 도관 저수지 사이에 촌락들이 주로 분포하고 있다.
[현황]
다인면의 가장 동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8.57㎢이며, 총 231가구에 505명[남 245명, 여 260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삼분 1리, 삼분 2리, 삼분 3리, 삼분 4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안계면의 시안리, 안사면의 만리리, 서쪽으로는 외정리, 남쪽으로는 단북면의 효제리, 연제리, 북쪽으로는 달제리와 각각 면하고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동리, 남송, 화림, 신항, 신기, 새터 등이 있다.
경상북도의 중심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탁월하여 2008년 경상북도청 이전 후보지로 강력하게 부상했었다. 중앙 고속 도로와 중부 내륙 고속 도로의 중간에 위치하고 국도 28호선, 군도 25호선이 지나가 교통이 매우 편리하며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삼분 노인 회관과 삼분 1리 경로당 ·삼분 2리 경로당·삼분 3리 경로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