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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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政治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지역 주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의성 지역의 정치]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후 38선 북쪽 지역에는 8월 24일 소련군이 진주했다. 남한 지역에는 9월 8일 하지 중장이 인솔하는 미국 태평양 지구 사령부 제24군 휘하 부대 3개 사단으로 구성된 미군이 진주하였으며 이어 “북위 38도선 이남에 미군정(美軍政)을 실시한다.”는 「미군 사령부 명령 제1호」를 발표하였다. 1946년 5월 제1·2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자 1947년 미국의 트루먼 행정부는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 방침을 정한 후 9월 17일 제82차 국제 연합 총회에서 「국제 연합 감시 하의 남북한 총선거 실시안」을 상정하였고 11월 14일 가결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반대로 남북한 총선거가 불가능해지자 1948년 2월 18일 국제 연합 소총회가 “가능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를 실시한다.”고 결의했고 이 결의를 바탕으로 5월 10일 남한 지역에 제헌 국회 구성을 위한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이후 의성 지역의 정치는 대개 대통령, 국회 의원, 지방 의회의 구성원 등을 선출하는 선거와 국민 투표 참여, 정당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국회 의원 선거와 국민 투표]
1948년 5월 10일 제헌 국회 구성을 위한 첫 선거가 실시되었다. 「남조선 과도 정부 법률 제5호 입법 의원 선거법」에 따라 의원 정수는 200명으로 정해졌으며 경상북도에는 33명이 배정되었다. 의성군은 갑구와 을구로 나누어 2명을 선출하게 되었고 의성군 갑구에서는 의성읍장 출신 무소속 정우일 후보, 의성군 을구에서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출신 대한 독립 촉성회 권병로 후보가 당선되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의성군 갑구에서는 국민당 후보 박영출, 의성군 을구에서는 무소속 권병로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1954년 5월 20일 제3대 국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의성군 갑구에서는 자유당 박영출, 의성군 을구에서는 무소속 박영교가 각각 당선되었다. 제4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58년 5월 2일 실시되었으며 의성군 갑구에서는 민주당 김규만, 의성군 을구에서는 자유당 박영교가 당선되었다. 그렇지만 제4대 국회는 4·19 혁명으로 인해 1960년 6월 23일 해산되었다. 제5대 국회 의원[민의원] 선거는 1960년 7월 29일 실시되었으며 의성군 갑구에서 민주당 오상직, 의성군 을구에서 민주당 우홍구가 당선되었지만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인해 국회가 다시 해산되었다. 1963년 11월 26일 실시된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부터 의성군의 선거구는 갑구와 을구가 통합되어 1명의 국회 의원만 선출하도록 바뀌었다. 1963년 1월 6일 개정된 국회 의원 선거법에 따라 선거구를 지역구[131명]와 전국구[44명]로 나누고 소선거구 다수 대표제와 비례 대표제를 병용했기 때문이다. 1963년 11월 26일 실시된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민주 공화당 오상직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우홍구, 1971년 5월 25일 실시된 제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민주 공화당 김상년 후보가 당선되었다.
1972년의 10월 유신 이후 국민 투표에 의해 유신 헌법이 확정되고 국회 의원 선거구는 중선거구제로 바뀌었다. 1973년 2월 27일 실시된 제9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의성군은 경상북도 제6선거구[안동시·안동군·의성군]에 편입되었고 국회 의원은 이들 3개 지역에서 2명을 선출했다. 의성 출신인 민주 공화당 김상년 후보와 안동 출신인 신민당 박해충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들은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재선되었지만 1979년 10·26 사건이 일어남에 따라 제10대 국회는 임기 만료 전에 해산되었다. 개정된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1981년 3월 25일 11대 국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의성군 지역은 경상북도 제7선거구로 개칭된 안동시·안동군·의성군 선거구에 편입되었다. 민주 정의당 권정달 후보와 한국 국민당 김영생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들은 1985년 2월 12일 실시된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제6공화국이 출범한 후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였으며 의성군 선거구에서는 민주 정의당 정창화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2년 3월 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민주 자유당 김동권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는 이른바 통합 선거법[공직 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에 의해 실시된 최초의 국회 의원 총선거였으며 의성군 선거구에서는 자유 민주 연합 김화남 후보가 당선되었다. 농촌 인구가 급감하면서 2000년 4월 13일 실시된 16대 국회 의원 선거 때에는 의성군과 군위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합병되었고 한나라당 정창화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17대 국회 의원 선거부터는 의성군·군위군·청송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조정되었으며 한나라당 김재원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 정해걸 후보, 2012년 4월 11일 실시된 제19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김재원 후보가 당선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차례 시행[1962년 12월 12일, 1969년 10월 17일, 1972년 11월 21일, 1975년 2월 12일, 1980년 10월 22일, 1987년 10월 27일]되었던 국민 투표에서 의성군 지역민의 투표율은 각각 84.2%, 86.1%, 97.0%, 95.2%, 98.9%, 90.5%로 나타나 첫 국민 투표를 제외하면 전국 평균[85.3%, 77.1%, 91.9%, 79.8%, 95.4%, 78.2%]보다 훨씬 높은 참여율을 보여 주고 있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나타난 지역민의 정치 지향]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48년 7월 20일 제헌 의회에서 선출되었다. 1952년 7월 18일 정·부통령 직선제 등을 골자로 하는 발췌 개헌안이 공포됨에 따라 제2대 대통령 선거에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다. 1952년 8월 5일 실시된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의성 지역 주민들은 무소속 조봉암에게 5만 4489표, 자유당 이승만에게 4,545표, 무소속 이시영과 신흥우에게 각각 2,226표씩을 투표함으로써 이승만 보다는 조봉암을 선호했지만 전국 집계 결과에서는 이승만이 523만 8769표를 획득, 압승했다[조봉암은 79만 7504표].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자유당 이승만 3만 2484표, 무소속 조봉암 2만 1244표로 나타나 조봉암에 대한 지지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지만 전국 평균보다는 지지율이 높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태동된 제3공화국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는 집권 여당인 민주 공화당과 그 후신인 민주 정의당[1981년 1월~1990년 2월], 민주 자유당[1990년 2월~1995년 12월], 신한국당[1996년 2월~1997년 11월], 한나라당[1997년 11월~2012년 2월], 새누리당[2012년 2월~현재] 후보를 선호하는 성향을 보여 준다. 보수 정당에 대한 지역민의 편향적 지지 성향은 김대중 정부[1998년~2003년], 노무현 정부[2003년~2008년]로 정권이 이양된 시기와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지방 자치와 의성 지역의 정치]
1. 지방 자치제의 실시
지방 자치와 연관된 의성 지역의 정치는 주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되는 의성군 의회와 의성 군수를 선출하는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 자치 제도는 제헌 헌법 제97조 ‘지방 자치에 관한 규정’에 따라 1949년 7월 4일 ‘지방 자치법’이 공포됨으로써 처음 시작되었으며 1950년 12월 선거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당시의 지방 자치제는 지방 자치 단체의 종류를 서울특별시 및 시·읍·면의 2종류로 하며 의결 기관인 의회와 집행 기관인 단체장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시·읍·면장은 해당 지역 의회에서 간접 선거로 선출하고 지역 의회의 임기는 4년, 명예직 의원으로 구성되며 의원 수는 인구를 기준으로 정하였다. 그렇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지방 의회 선거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4월 25일 제1대 시·읍·의회 의원 선거가, 5월 5일에는 시·읍·면장 선거가, 5월 10일에는 도의원 선거가 각각 실시되었다. 당시는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서울특별시, 강원도, 지리산 인근 지역 등은 선거가 실시되지 못했지만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는 초대 읍·면 의회 의원 선거, 경상북도 의회 선거, 읍·면장 선거가 모두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 의성군에서는 의성읍 의회 의원 15명, 단촌면을 위시한 16개 면의회의 의원 191명, 경상북도 의회 의원 3명과 의성읍 및 관내 16개면 읍·면장들이 선출되었다. 도의회 의원 선거는 제1, 제2, 제3 선거구로 나누어 실시되었으며 당선인 3명 중 2명은 무소속, 1명은 대한 청년당 후보였다. 읍·면 의회 의원들에 관해서는 이름만 기록되어 있을 뿐 소속 정당에 관한 자료는 전하지 않는다.
지방 자치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각종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1956년 2월 13일과 7월 8일 「지방 자치법」은 두 차례 개정되었다. 이에 따라 시·읍·면장은 주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하지만 임기가 만료되지 않은 장은 기득권을 인정하여 선거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제2대 지방 자치 선거는 1956년 8월 8일 실시되었으며 의성 지역에서는 의성읍 의회 의원 13명, 단촌면을 위시한 16개 면의회의 의원 183명을 선출하였다. 읍·면장 선출도 병행되었지만 전임자의 기득권이 인정되는 바람에 의성읍·사곡읍·금성면·단북면·신평면 등 일부 지역에서만 선거가 실시되고 나머지 지역은 임기 문제로 지연되었다. 8월 13일 실시된 경상북도 의회 의원 선거에는 자유당 후보 2명과 무소속 후보 1명이 각각 당선되었다.
제3차 지방 자치 선거는 1960년 8월에 실시될 예정이었지만 4·19 혁명으로 인해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고 1960년 11월 1일 「지방 자치법」이 개정·공포됨에 따라 12월 12일 시·도 의회 선거, 12월 19일에 시·읍·면 의회 의원 선거, 12월 26일 시·읍·면장 선거가 실시되었다. 읍·면 의회 의원의 선거 연령은 종전 21세에서 20세로 낮아졌다. 의성군 지역에서는 의성읍 의회 의원 13명과 단촌면을 위시한 16개 면의회 의원 183명, 의성읍을 위시한 17개 읍·면장, 경상북도 의원 4명을 각각 선출했다. 도의원 선거에서는 4개 선거구 모두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3대 지방 의회 의원과 읍·면장의 임기는 1964년까지였지만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함으로써 지방 의회는 해산되었고 지방 자치 제도도 막을 내렸다.
2. 지방 자치 제도의 부활
지방 자치 제도는 1987년 「지방 의회 구성에 관한 유예 규정」이 철폐되고 1988년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 「지방 의회 의원 선거법」 제정이 이루어짐으로써 부활했다. 이에 따라 지방 의회가 해산된 지 30년 만인 1991년 3월 26일 의성 지역에서도 시·군·자치구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고 광역 의회가 재구성되었다. 기초 의원 선거에서 의성군 지역은 의성읍 2명, 단촌면 등 17개 면에서 17명의 의원을 각각 선출해 제1대 의성군 의회를 구성했는데 사곡면과 단밀면 지역은 단일 후보로 무투표 당선되었다. 3개 선거구에서 3명의 광역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에서는 3개 선거구 모두에서 여당이던 민주 자유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가 실시되면서 지방 정치는 제1기 민선 지방 자치 시대로 들어섰다. 의성군 의회는 의원 정수는 18명[제1대, 제2대, 제3대]이었다가 제4대 의회부터는 13명[지역 의원 11명, 비례 대표 의원 2명]으로 바뀌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경상북도 의회의 의원의 수가 87명에서 60명[비례 대표 6명 포함]으로 조정됨에 따라 의성 지역 의원 수도 2명으로 줄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선자들의 정당은 자유 민주 연합 1명, 한나라당 1명이 선출되었던 제2대 광역 의회를 제외하면 모두 한나라당과 그 후신인 새누리당 소속이다.
지방 자치 단체장인 의성 군수 선거에서는 1995년 6월 27일 처음 실시된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무소속 정해걸이 군수로 당선된 이래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제3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까지 내리 3선을 했다. 2006년 5월 30일 실시된 제4대 전국 지방 동시 선거에서는 무소속 김복규 후보가 군수로 당선되었으며 2012년 6월 2일 실시된 제6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까지 연이어 당선되어 현재 3선 군수로 활동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에는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재출마, 당선되었다.
[의성 지역 정치의 평가]
해방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의성군 지역에서는 많은 정치인들이 다양한 정당과 사회단체들을 조직하여 활동해 왔다. 그렇지만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 의원 선거부터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대 국회 의원 선거의 결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역 정치인들은 정당에 소속되기보다는 무소속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한 경우가 많다.
지역민의 정치 지향은 1952년의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준 것처럼 한때 진보적 성향을 표출했다. 그렇지만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태동된 제3공화국 이후에는 당시의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 공화당과 그 후신인 민주 정의당-민주 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적 성향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