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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순창의 화산 서원에 배향된 문관이자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霽峰)·태헌(苔軒). 증조할아버지는 고자검(高自儉)이며, 할아버지는 고운(高雲)이고,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고맹영(高孟英)이다. 어머니는 남평 서씨 서걸(徐傑)의 딸이고, 처는 울산 김씨 김백균(金百鈞)의 딸이다. 아들은 고인후(高因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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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열녀. 본관은 도강(道康). 할아버지는 사인(舍人) 정황(丁熿)이고, 남편은 첨정(僉正) 권백시(權伯時)이다. 정씨는 정유재란 때에 남편을 따라 무림방(茂林坊)[지금의 순창군 구림면]으로 피난을 하였는데, 왜적이 그곳까지 추격하여 핍박을 하였다. 형세가 정절을 보전하기 어려워지자 정씨는 남편에게 “나는 이미 결정을 하였으니 그대는 부디 잘 보전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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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무양사에 배향된 개항기의 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 호는 송사(松沙). 할아버지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이다. 기우만(奇宇萬)[1846~1916]은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에서 출생하였다. 호남에서 이름 높은 유학자였던 기정진의 뒤를 이어 문유(文儒)로 추대되었다. 1881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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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성리학자.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기건(奇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증참판 기재우(奇在祐)이다. 어머니는 안동 권씨 권덕언(權德彦)의 딸이다. 기정진(奇正鎭)[1798~1879]은 1798년(정조 22)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동산리[일명 조동, 구수동]에서 출생하였으나, 양친이 돌아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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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지역의 효자. 김명준(金命俊)은 순창에서 하늘이 낸 효자라고 일컬어졌다. 사랑과 공경을 다하여 부모를 섬겼고,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일찍 안부를 묻는다는 뜻]을 늙어서까지도 거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할 때에는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이며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의 상(喪)을 당해서는 법도에 따라서 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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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순창 지역의 열녀이자 효부.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준화(朴準化)이고, 남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봉현(金琫炫)이다. 김봉현 처 열녀 밀양 박씨는 김봉현과 혼인한 후 나이 드신 시아버지가 중풍(中風)을 앓자 7년여 동안 정성을 다하여 약시중을 하며 간병하였다. 그러나 끝내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를 갖추어 삼년상을 마쳤다. 이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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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에서 활동한 유학자이자 문관.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담재(澹齋). 증조할아버지는 김의강(金義剛), 할아버지는 김환(金丸), 아버지는 김령(金齡)이다. 어머니는 조적(趙勣)의 딸 옥천 조씨이고, 처는 윤임형(尹任衡)의 딸이다. 김인후(金麟厚)[1510~1560]는 1510년(중종 5) 장성(長城)에서 출생하였다. 타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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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 옥산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관이자 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소미산인(少微山人). 증조할아버지는 김서(金湑), 할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 아버지는 김맹(金孟)이다. 처는 우극관(禹克寬)의 딸, 후처는 김미손(金尾孫)의 딸이다. 증손은 의병장 김치세(金致世)이다. 김일손(金馹孫)[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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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군수로서 삼인대에서 중종의 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한 문관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沖庵)·고봉(孤峯). 증조할아버지는 김호(金滸)로 평택 현감(平澤縣監)을 지냈으며 도승지(都承旨)에 추증되었다. 할아버지는 김처용(金處庸)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아버지는 김효정(金孝貞)이며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냈고,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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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이자 의병장. 본관 언양(彦陽).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할아버지는 주부 김윤손(金潤孫)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언침(金彦琛)이며, 어머니는 양성 이씨(陽城李氏) 부위(副尉) 이감(李瑊)의 딸이다. 아들은 김상건(金象乾)이다. 김천일(金千鎰)[1537~1593]은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 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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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순창 출신의 효자. 할아버지는 돌생(乭生)이고, 아버지는 막금선(莫金善)이다. 김해중(金海重)의 조상은 대대로 순창 향교에서 노비로 있었다. 순창 향교를 이전하던 겨울에 할아버지 돌생은 향교의 성전 위패(聖殿位牌)를 혼자 지키며 밤낮으로 떠나지 않다가 병들어 죽었다. 아버지인 막금선은 계모를 지극히 섬겨 사람들이 효자라고 칭찬하였다. 김해중이 일곱 살 되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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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처사.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인원(仁元), 호는 학곡(鶴谷). 김홍(金洪)은 1519년(중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고, 1531년(중종 26)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윤리에 돈독하여 효와 우애로써 집안일을 다스렸으며, 학문이 탁월하여 거연(居然)한 대덕(大德)의 풍취(風趣)가 있었다. 항상 공산월야(公山月夜)에 자양옹(紫陽翁)[주자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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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에서 활동한 문장가.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학경(學卿), 호는 호계(虎溪). 고조할아버지는 석헌(石軒) 류옥(柳沃), 아버지는 류호(柳灝)이다. 형제로는 류동숙(柳東淑), 류동순(柳東洵), 류동연(柳東淵)이 있다. 류동유(柳東游)[1615~?]는 1615년(광해 7) 남원에서 출생하여 살다가 결혼한 이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에 정착하였다. 류동유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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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삼인대에서 폐비 신씨 복위 논의에 참가하였던 문관이자 유학자.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 고조할아버지는 고려 시대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를 지낸 박세량(朴世梁), 증조할아버지는 민부 낭중(民部郎中) 증(贈) 사복시 정(司僕寺正)을 지낸 박광리(朴光理), 할아버지는 조선 시대에 들어 의천군사(宜川郡事) 증(贈) 이조 판서(吏曹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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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무관.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홍서(弘瑞), 호는 만은(晩隱). 고려 시대 문신인 문량공(文良公) 설공검(薛公儉)의 후예이다. 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낸 설훈(薛纁)이며, 어머니는 고령 신씨로 신숙주(申叔舟)의 고모이다. 설계조(薛繼祖)[?~1467]는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모정리에서 출생하였다. 1443년(세종 25) 무과에 급제하였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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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상검(常儉), 호는 경재(敬齋). 할아버지는 설선필(薛宣弼), 아버지는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낸 설신(薛愼)이다. 설공검의 할머니, 즉 설신의 어머니 조씨(趙氏)는 젖이 네 개였는데, 아들 여덟 가운데 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봉해졌다. 동생은 설인검(薛仁儉)이다. 설공검(薛公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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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절의를 지킨 순창 출신의 충신. 본관은 순창(淳昌). 호는 암곡(巖谷). 할아버지는 설봉(薛鳳), 아버지는 보국 판서(輔國判書)를 지낸 설안통(薛安統)이다. 아들은 설현(薛絃)·설훈(薛纁)·설위(薛緯)·설굉(薛紘)·설경(薛經)이다. 설위는 조선 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다. 설응(薛凝)은 순창의 남산대에서 태어났다. 음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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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이검(而儉), 호는 근제(謹齊). 할아버지는 설선필(薛宣弼)이고, 아버지는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낸 설신(薛愼)이다. 설인검의 할머니, 즉 설신의 어머니 조씨(趙氏)는 젖이 네 개였는데, 아들 여덟 가운데 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봉해졌다. 문량공(文良公) 설공검(薛公儉)이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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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이자 지리학자. 본관 고령(高靈).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菴). 신숙주(申叔舟)의 아우인 신말주(申末舟)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운(申澐)이고, 할아버지는 신선영(申善泳)이며, 아버지는 신말주의 10대손으로 진사를 지낸 신래(申淶)이다. 어머니는 한산 이씨 이의홍(李儀鴻)의 딸이며, 부인도 한산 이씨 이형만(李亨晩)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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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한 문관.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희인(希仁), 호는 이계(伊溪). 증조할아버지는 공조 참판을 지낸 신장(申檣)이고, 할아버지는 수군절도사를 지내고 순창에 귀래정을 건립한 신말주(申末舟)이다. 아버지는 여절교위(勵節校尉) 신홍(申洪)이며, 어머니는 변균(卞鈞)의 딸이다. 신공제(申公濟)[1469~1536]는 1486년(성종 17) 진사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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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1429~1503]가 5대조이고, 아버지는 신종준(申宗准)이다. 신람(申灠)은 뜻이 높고 고상하여 효행으로 나라에서 여러 번 부름이 있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공명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향산(香山)에 은거하였다. 선조가 손수 ‘향산 처사(香山處士)’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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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에 귀래정을 짓고 은거한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자집(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 고령 신씨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말에 예조 판서·공조 판서를 역임한 신덕린(申德隣)이다. 신덕린은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아들 신포시(申包翅)와 함께 개성 두류산에 은거하였다가, 다시 전라도 광주의 서석산으로 옮겨 갔다. 신말주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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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명보(明甫), 호는 칠휴당(七休堂).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1429~1503]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신흡이다. 신상용(申尙溶)[1577~1618]은 1577년(선조 10)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대에서 출생하였으며, 과거 공부를 일삼지 않고 은거하여 성현의 책을 읽었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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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증조할아버지는 참찬 신공제(申公濟)이다. 한편,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는 신말주(申末周)가 증조할아버지로 되어 있다. 신책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묘를 옮겨 어머니와 합장하고 아버지를 위하여 3년 동안 추복(追服)[상을 당한 때에 사정이 있어 입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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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명사.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언형(彦衡),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아버지는 양돈(楊墩)이고, 부사 양공준(楊公俊)과는 사촌 관계이다. 양공매(楊公佅)는 시와 술을 좋아하였다. 명사로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 기봉(岐峰) 백광홍(白光弘)[1522~1556], 석문(石門) 임억령(林億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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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열녀. 남편은 양대춘(楊大春)이다. 양대춘 처 열녀 이씨는 남편이 죽은 뒤 밤낮으로 곡을 하고 3년 동안 한결같이 죽만 먹었다. 삼년상을 치른 뒤에도 생선과 고기를 먹지 않았고, 해진 옷을 입고 쑥대 자리에서 지냈다.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 가지 않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 가지 않는 등 애를 태우고 슬퍼함이 남달랐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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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구암(龜岩). 동생은 양돈(楊墩)이다. 아들은 양공준(楊公俊)인데,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좌랑과 춘추관 기주관을 지냈다. 양공준의 아들 양홍(楊洪)과 손자 양사형(楊士衡), 증손자 양시보(楊時普) 및 양시보의 사촌인 양시우(楊時遇)와 양시정(楊時鼎)까지 4대가 연속해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양배(楊倍)는 순창군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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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문관이자 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평(季平), 호는 영하정(暎霞亭)·어은(漁隱). 증조할아버지는 양배(楊培), 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 아버지는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을 지낸 양홍(楊洪)이다. 어머니는 순흥 안씨(順興安氏) 안극함(安克諴)의 딸이다. 아들은 양시진(楊時晉)이다. 양사형(楊士衡)[1547~1599]은 1547년(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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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양수생(楊首生)과 순창의 관계는 양수생의 처 이씨에서 비롯된다. 이씨는 양수생이 죽은 뒤 가족들로부터 재가를 종용받자 남편의 고향인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얼마 뒤 순창으로 이주하여 아들 양사보(楊思輔)를 키워 가문을 잇게 하였다. 양사보는 조선 태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함평 현감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나라에서는 이씨에게 정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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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정(子整). 아버지는 병조 정랑을 지낸 양사형(楊士衡)이다. 형은 양시진(楊時晋), 동생은 양시매(楊時邁)이다. 처는 해남인 윤서중(尹瑞中)의 딸이며, 외아들 통덕랑 양여직(楊汝稷)과 딸 셋을 두었다. 양시면(楊時冕)[1585~1626]은 1585년(선조 18)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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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승(子昇), 호는 구음(龜陰). 증조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 할아버지는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을 지낸 양홍(楊洪), 아버지는 병조 정랑을 지낸 양사형(楊士衡)이다. 외조부는 최영(崔穎)이고, 처는 김대립(金大立)의 딸 강진 김씨이다. 남원 양씨는 고려 말 대제학을 지낸 양이시(楊以時)의 며느리이자 양수생(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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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열녀. 본관은 도강(道康). 아버지는 별제(別提) 김대립(金大立), 남편은 구음공(龜陰公) 양시진(楊時晉)[1573~1615]이다. 양시진 처 열녀 강진 김씨[1577~1650]는 1577년(선조 10)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깊이 수학하여 일찍이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양시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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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순창 출신의 거부(巨富)이자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군직(君直). 양사보(楊思輔)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양시정(楊時鼎)이다. 부인은 유현의 딸 문화 유씨이다. 아들은 양운거(楊雲擧)이다. 양여균(楊汝筠)[1548~1636]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솔 300명을 의병으로 거느리고 쌀 300석과 함께 도성으로 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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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달(季達), 호는 백수(白水). 아버지는 승의랑(承議郞) 양처기(楊處基)이며, 어머니는 강화 최씨(江華崔氏)로 최휴지(崔休之)의 딸이다 양응수(楊應秀)[1700~1767]는 1700년(숙종 26) 순창군 적성면 서림에서 태어났다. 7세에 글을 익히기 시작하여 젊어서는 권필(權韠)의 문하에서 배웠고, 38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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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관으로 남원 양씨 순창 입향조 양사보의 조부. 본관은 남원(南原). 증조할아버지는 양국재(楊國財), 할아버지는 양윤보(楊允保), 아버지는 경덕재생(經德齋生)인 양서령(楊瑞齡)이다. 처는 문신 탁광무(卓光茂)의 딸 광산 탁씨이며, 아들은 양수생(楊首生), 손자는 양사보(楊思輔)이다. 양이시의 며느리이자 양수생의 부인인 숙인 이씨(淑人李氏)는 1379년(우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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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순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정립(定立), 호는 최락당(最樂堂). 양사민(楊士敏)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양여즙(楊汝楫)이고, 아버지는 증승정원 좌승지 양문거(楊文擧)이다. 양정기(楊鼎基)는 성품이 온후하고(溫厚)하고 용모가 단장(端莊)하며, 말을 하는 동안 웃는 일은 드물었다고 한다. 부모를 섬김에 지극히 효를 다하였고, 조금도 뜻을 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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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할아버지는 사헌부 지평 양시진(楊時晋)이고 아버지는 진사 양여매(楊汝梅)이다. 양해거(楊海擧)는 하늘이 낸 효자라고 불렸다. 형제간의 우애(友愛)가 매우 뛰어났으며, 나이 60세가 넘도록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안부를 묻는다는 뜻]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계모인 신씨(申氏)가 막내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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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순창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길부(吉夫), 호는 모정(慕亭). 고려 시대 대제학을 지낸 양수생(楊首生)의 후손으로 양수생의 처 이씨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홍패를 안고 개성에서 남원으로 낙향, 다시 순창으로 이주해 동계면 구미리 일대에 남원 양씨가 현재까지도 세거하게 하였다. 양희적의 아버지는 돈암공(墩庵公) 양사선(楊士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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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청백리. 옹몽진(邕夢辰)[1518~1584]의 본관인 순창 옹씨는 고려 시대에 병부 상서를 지낸 옹희태(邕羲泰)를 비조로 하며, 원래 고려 시대에 거족이었다 한다. 고려가 망하면서 초산(楚山)[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옥천(玉川)[지금의 순창]의 향리로 강속되었다. 옹몽진이 음성 현감을 역임하고 충청도사, 병조 좌랑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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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에 거주한 문관.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군필(君弼), 호는 귀락와(歸樂窩). 이조 판서를 지낸 유백유(柳伯儒)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나옹(懶翁) 유익서(柳益瑞),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유지채(柳之采)이다. 아버지는 양기공(兩棄公) 유휘소(柳輝韶)이고, 어머니는 함평 이씨(咸平李氏) 생원 이숙빈(李淑馪)의 딸이다. 처는 문정공(文正公) 김인후(金麟厚)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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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삼인대에서 폐비 신씨 복위 논의에 참가하였던 문관.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계언(啓彦), 호는 석헌(石軒). 증조할아버지는 유면(柳沔), 할아버지는 유인흡(柳仁洽), 아버지는 순창 훈도(淳昌訓導)를 지낸 유문표(柳文豹)이다. 어머니는 현맹인(玄孟仁)의 딸이다. 할아버지 유인흡이 계유정난 뒤 사육신인 유성원(柳誠源)과 친척이라 화를 면하기 위하여 순창으로 이거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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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 본관은 광양(光陽). 자는 석지(釋之).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에 증직된 이인영(李仁英)이다. 이무방(李茂方)[1319~1398]은 1319년(충숙왕 6) 출생하였고, 충목왕 때 급제하여 전교 교감(典校校勘)에 오르고 공민왕이 즉위한 1351년에 외직으로 나가 순창을 다스렸다. 이때 누가 그 고을의 토산물을 얻으려 하였다. 이무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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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호계리에 있는 호계사에서 향사하는 고려 후기의 충신.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양대(養大). 아버지는 찬성사 임중연(林仲沇)이다. 고려 말 상례(喪禮)는 단상(短喪)으로 백일상을 지내는 것이었으나, 임선미(林先味)는 고례(古禮)에 따라 부친상을 삼년상으로 치렀다. 성석린(成石璘)·박상충(朴尙衷) 등 신진 사대부들과 가까이 지냈다. 고려가 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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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효자. 본관 평택(平澤). 자는 인숙(仁淑), 호는 송계(松溪).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임선미(林先味)[1362~1394]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임필주(林弼周)이다. 임판호(林判鎬)[1879~1958]는 1879년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집안이 가난하여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만 앞 사람들의 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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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의 훈몽재에서 강학한 유학자.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 초명은 전경륜(田慶倫)·전경길(田慶佶). 아버지는 전재성(田在聖)이다. 전우(田愚)[1841~1922]는 1841년(헌종 7)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살았다. 이때 당대의 유학자 임헌회(任憲晦)[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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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정시현(鄭時賢)[1598~1685]은 1598년(선조 31) 출생하였는데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늙어 이가 다 빠지자 정시현은 부인 이씨를 시켜 젖을 드리도록 하였는데, 노망이 든 아버지가 이따금 며느리더러 어머니라 부르기도 하였다. 나이 60세에 부모의 상을 당하자 죽만 먹으면서 삼년상을 치렀다. 고을 사또 윤종지(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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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천태종 고승(高僧). 일명 무외(無畏)라고도 불린 정오(丁午)는 충렬왕과 충선왕, 충숙왕의 3대에 걸쳐 대선사와 국통으로 추대되었던 당대 불교계의 거두였다. 법형(法兄)으로 원혜 국통(圓慧國統)이 있고, 제자로는 굉지(宏之)·승숙(承淑)·중덕(中德)·일생(日生) 등이 있었다. 문장에도 능하여 『동문선(東文選)』에 글 20여 편이 전한다. 정오는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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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 부조묘(不祧廟)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가구(可久). 증조할아버지는 정인검(鄭仁儉), 할아버지는 정염(鄭濂)이고,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정효상(鄭孝常)[1432~1481]은 1432년(세종 12)에 출생하여 1451년(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4년(단종 2)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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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노직(魯直)이다. 조렴(趙廉)[1290~1343]은 1290년(충렬왕 16) 순창에서 출생하였고, 1315년(충숙왕 2) 과거에 급제하였다. 1323년 안축(安軸)·최용갑(崔龍甲)과 함께 원나라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였고, 요양등로총관지부사(遼陽等路摠管知府事)가 되었다. 1330년(충숙왕 17) 전리좌랑(典理佐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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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에서 후진을 양성한 유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길부(吉夫), 호는 송은(松隱). 할아버지는 조득현(曺得賢), 아버지는 조곤하(曺袞河)이다. 아들은 동래 부사를 지낸 조희(曺禧)이다. 조숙덕(曺淑德)[1459~1519]은 1459년(세조 5) 전라남도 담양군 운제에서 출생하였다. 1486년(성종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이어 부모상을 당하여 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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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사홍(士弘), 호는 모충재(慕忠齋). 7대조 할아버지는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조원길(趙元吉)이며, 아버지는 참봉(參奉) 조응견(曺應堅)이다. 조여관(趙汝寬)은 1557년(명종 12)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성품이 매우 효성스러웠으며, 1577년(선조 10) 20세 때에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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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한 고려조의 문관.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영옥(英玉), 호는 낙재(樂齋). 할아버지는 조전(趙佺), 아버지는 충헌공(忠獻公) 옥천 부원군 조원길(趙元吉)이다. 형제로는 조유(趙瑜)가 있다. 조영(趙瑛)[1344~1428]은 1344년(충혜왕 복위 5) 출생하였는데, 모부인 김 씨의 태몽에 어떤 노구(老嫗)가 백벽(白璧)[흰 옥으로 만든 고리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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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중실(仲實). 할아버지는 화릉 참봉을 지낸 조여옥(趙汝玉)이고, 아버지는 성균 생원 조수억(趙壽億)이다. 어머니는 조원길(趙元吉)의 후손인 조구(趙球)의 딸이다. 처는 해주 오씨이고, 재취는 순천 박씨이다. 후사는 없다. 조유성(趙惟誠)[1526~1575]은 1526년(중종 21) 3월에 순창에서 출생하였으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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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독처당(獨處堂).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조응견(趙應堅)이고, 아버지는 조헌을 따라 순절한 조여관(趙汝寬)이다. 조의효(趙義孝)[1592~?]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순국한 절사 조여관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3세 때에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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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인석(仁錫), 호는 지당(芝堂). 아버지는 진종하(晉宗夏)이다. 진규석(晉奎錫)[1906~?]은 1906년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지혜가 출중하였으며 의약술에도 능하였다. 18세 때 아버지가 병에 들었을 때 잠시도 곁을 떠나는 일 없이 정성을 다하였고, 병세가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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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의병. 채영찬(蔡英贊)[1845~1907]은 1845년(헌종 11) 현재의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도고리에서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채기문(蔡基文)이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당대를 대표하던 유학자 최익현(崔益鉉)[1833~1906]은 1906년 정읍 태인에 살고 있는 임병찬과 의논하여 순창, 태인 일대를 거점으로 의병을 일으키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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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앙(士仰), 호는 만성(晩醒). 증조할아버지는 최식(崔寔), 할아버지는 최봉성(崔鳳成), 아버지는 최석전(崔錫銓)이다. 어머니는 이천규(李天奎)의 딸이다. 최경악(崔景岳)은 1727년(영조 3) 순창군(淳昌郡) 유등면(柳等面) 화탄(花灘)에서 출생하였다. 1759년(영조 3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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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과 태인을 기반으로 활동한 유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庵), 아명(兒名)은 최기남(崔奇男). 증조할아버지는 최광조(崔光肇), 할아버지는 최극경(崔克敬), 아버지는 최대(崔岱)이다. 어머니는 이계진(李啓晉)의 딸이다. 최익현(崔益鉉)[1833~1906]은 1833년(순조 33)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였다. 9세 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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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화순(和順). 최숙(崔肅)의 6세손이다. 최충길(崔忠吉) 형제는 1597년 정유재란 때 부모를 모시고 산속에 따로 숨었다. 아버지가 먼저 왜적을 만나자 최충길이 몸으로 아버지를 가리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러자 왜군은 차마 최충길 부자를 해치지 못하고 패문(牌文)을 주면서 “다른 적들이 이르면 이것을 보여라.”라고 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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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 향교에 배향된 통일 신라 시대 학자이자 문장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 아버지는 원성왕 때 숭복사(崇福寺) 창건에 참여하였다는 최견일(崔肩逸)이다. 최치원(崔致遠)은 857년(헌안왕 1) 출생하여 868년(경문왕 8)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8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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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순창 지역의 열녀. 신해년(辛亥年)에 순창에 큰 흉년이 들었는데, 열녀 이씨의 남편 한몽인(韓夢寅)은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게 되자 이를 부끄럽게 여겨 늘 독약인 비상을 주머니에 간직하고 다녔다. 한몽인이 부인 이씨와 결별(訣別)하며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욕(辱)을 보고 살아서 무엇하리요. 차라리 이것을 먹고 죽으리라.” 하고 비상을 나누어 갖고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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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하다가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의병장.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기(景期), 호는 구와(龜窩). 고조할아버지는 좌익공신(佐翼功臣)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이며, 아버지는 대호군 한축(韓軸)이다. 한응성(韓應聖)[1557~1592]은 1557년(명종 12)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에서 출생하여 순창으로 옮겨 살았다. 조헌(趙憲)에게 학문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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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갖바치[皮工]였다. 한해오(韓海悟)는 타고난 자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즐기시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 올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묘소가 약 8㎞ 밖에 있었음에도 날마다 가서 곡을 하고 비바람도 피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위를 방에 모시고는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올리고, 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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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 효자로 이름이 난 홍축(洪舳)의 후손이다. 선조 중에는 현감을 지낸 이도 있어 신분은 양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홍해(洪楷)는 타고난 성품이 충성스럽고 효도와 우애가 깊었으며, 온화하고 어질며, 공손하고 검소한 덕이 있다고 고을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집안의 어른들을 잘 모시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