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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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末舟 |
이칭/별칭 | 자집(子楫),귀래정(歸來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429년 - 신말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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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454년 - 신말주 과거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476년 - 신말주 전주 부윤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83년 - 신말주 창원 도호부사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87년 - 신말주 경상 우도 병마절도사, 대사간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488년 - 신말주 첨지중추부사, 전라 수군절도사에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503년 - 신말주 사망 |
거주|이주지 | 귀래정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538-1 |
묘소|단소 | 신말주 묘소 -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광암리 |
사당|배향지 | 화산 서원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고령 |
대표 관직|경력 | 대사간 |
[정의]
조선 전기 순창에 귀래정을 짓고 은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자집(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 고령 신씨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말에 예조 판서·공조 판서를 역임한 신덕린(申德隣)이다. 신덕린은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아들 신포시(申包翅)와 함께 개성 두류산에 은거하였다가, 다시 전라도 광주의 서석산으로 옮겨 갔다. 신말주의 할아버지 신포시는 신장(申檣)·신평(申枰)·신제(申梯)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이 가운데 신말주의 아버지는 직제학과 부제학을 거쳐 오랫동안 대제학으로 있다가 나주로 낙향한 신장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주에 거주하였을 때 결혼한 정유(鄭有)의 딸이다. 신말주의 형제는 신맹주(申孟舟)·신중주(申仲舟)·신숙주(申叔舟)·신송주(申松舟)·신말주(申末舟) 등 5형제이다. 이들 가운데 신숙주·신송주·신말주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특히 신숙주는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매우 컸다. 신말주의 처는 순창 설씨 설백민(薛伯民)의 딸이고, 손자는 이조 판서를 지낸 신공제(申公濟)이다.
[활동 사항]
신말주(申末舟)[1429~1503]는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정언·예조정랑 대사간·형조 참의 등을 거쳤다. 단종이 폐위된 뒤 처의 고향인 순창에 내려와 거주하였다.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귀래정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였다. 1476년(성종 7) 다시 벼슬에 나가 전주 부윤으로 재직하면서도 순창의 귀래정을 오갔다고 한다. 1483년 창원 도호부사, 1487년 경상 우도 병마절도사와 대사간, 1488년 첨지중추부사·전라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1503년(연산군 9) 12월 순창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작품으로 『십로 계첩』이 있다. 신말주는 말년에 70세가 넘은 노인인 이윤철(李允哲)·안정(安正)·김박(金博)·한승유(韓承愈)·설산옥(薛山玉)·설존의(薛存義)·오유경(吳惟敬)·조윤옥(趙潤屋)·장조평(張肇平)의 9인과 더불어 십로계(十老契)라는 계회를 가졌다. 『십로 계첩』은 1499년 신말주가 이 계회를 그린 것으로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소]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광암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 있던 화산 서원에 제향되었다. 1994년 신말주의 후손들이 『귀래정 실기(歸來亭實記)』를 간행하였다. 『귀래정 실기』는 신말주의 생애와 사적을 중심으로 유시와 유문, 그리고 논설과 해제, 직계의 명현 열사록 등을 정리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