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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소지(少之)이다. 할아버지 강은과 아버지 강해(姜諧)가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안골에 정착한 후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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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주군 세촌면 복정리 출신의 한학자 및 개화사상가. 강위(姜瑋)[1820~1884]는 경기도 광주군 세촌면 복정리[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출생으로, 본관은 진주, 자는 중무(仲武)·위옥(葦玉)·요장(堯章), 호는 추금(秋琴)·자기(慈屺)·청추각(聽秋閣)·고환당(古懽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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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석혜환, 정영신 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사회주의 노동운동 단체. 광주공동조합의 전신은 남한산노동공조회이다.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 근거했던 이 단체는 광주서의 탄압으로 1933년에 광주공동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조직의 강화를 도모하였다. 일제의 경찰 감시를 피하는 한편 지하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재편책에서 시도된 것이다. 광주공동조합은 성남지역이 수공업주의 공업 기반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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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경기도 광주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용인헌병분견대 소속 분견소. 일제의 헌병경찰제하에 광주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남한산성 용인헌병분견대 소속의 광주지역 분견소로, 정식 명칭은 ‘남한산성 용인헌병분견대 광주분견소’이다. 일제는 조선 강점 전에는 일본 헌병을 주로 도시에 집중 배치되었으나, 강점 후에는 분산 배치 체제로 전환시켜 농촌까지 헌병분견소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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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에 참여한 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524번지[남한산성로 791]이며 1913년 4월 26일에 출생하였다. 1930년경에는 인천 화평리에 거주하며 안경 및 전기 상점을 운영하였다.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에 참여하면서 인천지역에서 인천지역 적색노동조합과 연계를 시도하는 광주공산당협의회 세포 조직원으로 활약하였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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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에 대항하여 국권 회복을 위해 벌인 실력양성운동의 총칭. 광주지역에는 성호 이익(李瀷) 계열의 남인학자들이 많이 살았고 서학과 깊은 관련을 갖는 주위 환경이 조성되었다. 남인계열 학자들이 학문연구와 포교활동을 통하여 근대화를 추구한 지역이기 때문에 개화자강파가 일찍 생겨났고, 이들의 활동으로 국권 회복을 위한 기본 토양이 형성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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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금융 거래의 중개를 주요 업무로 하는 기관. 금융기관의 분류는 그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선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은행과 은행 이외의 금융 중개 기관 또는 비화폐적 금융 중개 기관의 분류가 있다. 중앙은행이 현금 통화를 공급하는 데 반하여 예금 은행은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흡수하고, 요구불 예금에 관해서는 예금 통화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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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및 성남 지역을 담당했던 기호흥학회의 지회.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는 일제의 침입에 대항하여 1908년 1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을 중심으로 교육 진흥과 지역 개발을 목표로 자강 운동을 벌인 애국 계몽 단체이다. 경기도에 6개 군, 충청북도에 4개 군, 충청남도에 7개 군의 지회를 두었는데, 기호흥학회 광주지회는 경기도 광주와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지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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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광주대단지 8.10 사태의 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 성남의 8.10사태는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층의 적극적인 생존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불만과 함께 정부의 부당한 조처에 반대한 시위운동은 폭력적인 양상으로 치달았다. 1971년 8월 10일 시위대가 관용차를 불태우고 시영버스를 탈취하며 극단적인 상황으로 전개된 것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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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철종 9)~1894년(고종 31).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도순(道淳)이고, 광산김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의 35세손이다. 부친은 김기석(金箕奭), 모친은 진천송씨와 함양박씨이다. 할아버지는 만포(晩圃) 김상식(金相植), 증조할아버지는 김인서(金人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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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순조 28)~1893년(고종 3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사공(士公)이고, 광산김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35세손이다. 부친은 김의교(金義敎), 모친은 청송심씨이다. 조부는 김현일(金顯鎰), 증조부는 김재욱(金載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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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에서 1928년까지 활동한 무신. 자는 진옥(振玉)이고, 광산김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의 35세손이다. 부친은 김기삼(金箕三), 모친은 고성이씨, 전주이씨이다. 조부는 첨추(僉樞)를 지낸 김상선(金相善), 증조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김낙서(金洛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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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철종 12)~1895년(고종 32). 조선 후기의 무신. 자는 윤일(允一)이고, 광산김씨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의 35세손이다. 부친은 김기삼(金箕三), 모친은 고성이씨, 전주이씨이다. 조부는 첨추(僉樞)를 지낸 김상선(金相善), 증조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김낙서(金洛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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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에 참여한 인물.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268번지이며, 1902년 12월 7일에 출생하였다. 1936년에는 당시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 김원식(金元植)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점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주의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1936년 1월 분실된 문건이 일경의 수중에 들어가 체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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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면단위의 행정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설치된 낙생 지역의 면사무소.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일원적 지배 구조를 위해 1911년 면 단위 행정 체계를 수립하면서 만들어진 낙생 지역의 행정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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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 낙생면 판교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낙생면의 만세시위운동은 초대면장 남태희 등의 주도하에 돌마면과 연합하여 전개되었다. 남태희는 3월 27일 돌마면에서 시위를 주도한 한백봉, 한순회 등의 권유를 받고 면민들에게 시위를 권고하고 참가를 유도하였다. 율리에서 시작한 만세시위가 분당리 장날에 군중이 가담하면서 규모가 증대되었다. 시위대는 행진을 계속하여 낙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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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에 있었던 우편소. 1911년 3월에 개국한 광주우편소는 낙생지역의 우편 업무를 관장하여 전신과 전화 업무를 취급하였다. 낙생지역에서 본격적인 우편 업무가 실시된 것은 1940년 3월 28일에 낙생우편소가 개소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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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문일(文一)이다.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하산운리에서 아버지 남진희(南晋熙)와 어머니 전주이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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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남한산성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광주, 이천, 여주의 의병들이 결성한 연합의병진. 의병진의 결성은 실학정신을 계승한 정신사적 토양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을미사변에 대한 충격, 단발령으로 대표되는 민족자존심에 대한 도전에 반발하려는 의지력으로 가속화되었다. 이런 관계로 전국 유림의 결단에 따라 직접무장투쟁을 독려한 전체적인 흐름에 호응하여 체계적인 의병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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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조직을 개선하기 위하여 전개하는 일체의 조직적인 활동. 여기서는 일제강점기 성남지역에서의 노동운동을 말한다. 성남지역의 자유노동자들은 영등포 공업지대 노동력의 원천이며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의 주체였다. 성남지역은 노동운동이 발전하는 데 있어 배후기지의 역할을 하며 1930년대 사회주의 노동운동이 세포조직을 구축하는 지역으로 부상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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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8일 대왕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광주군 돌마면 여수리가 본적인 이시종(李時鍾)은 농사에 종사하던 중 송파시위에 참가한 후 대왕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조선독립신문」의 독립에 관한 기사를 가지고 수서리에 돌아와 동리의 이재순(李載淳), 이규문(李揆文) 등 100여명을 규합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만세를 고창하면서 면사무소에 집결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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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대왕면에 있었던 우체국. 1963년 대왕우체국이 설치되면서 대왕면 지역의 독자적인 우편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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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외세의 침투에 대항하여 국권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일제강점 후 주권을 되찾고자 벌였던 일련의 반외세, 반봉건을 지향한 운동가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주의운동은 대내적으로 반봉건적인 모순을 제거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외압으로부터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근대 민족주의운동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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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부터 3일간 한백봉, 한순회, 남태희 등이 돌마면과 낙생면의 면민을 규합하여 진행한 연합적 만세시위운동. 돌마면과 낙생면 면민의 연합시위는 규모나 영향력이 지대한 것으로 파급효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시위를 주도하기 이전에 봉화와 횃불을 통해 상호 교감을 일으켜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전을 구사하였다. 시위운동의 주도자들은 3월 28일에도 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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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돌마면에 있던 행정기관. 일제 강점기에는 군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던 지방의 행정 체계를 소규모의 면 중심으로 개편하여 면 단위까지 경찰, 행정관서 등을 설치하고 총독이 일원적으로 지배하는 식민지 탄압망을 구축하였다. 성남 지역은 1910년 11월 10일 총독부령 제8호에 공포된 면의 관한 규정에 의하여 중부면은 산성리 935~3, 5 번지의 행궁터에 처음 개소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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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 돌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 돌마면의 시위운동은 천도교인과 농촌의 지식인층 일단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점이 특색이다. 이로써 참가자가 증폭하였고 낙생면과의 연합시위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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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89. 성남초등학교 신축 교사의 부지 등을 제공한 육영사업가. 박천복은 1901년에 출생하여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면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박천복이 성남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환원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성남초등학교의 신축 교지를 기증하는 한편 사회 공적 시설인 성남출장소의 부지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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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서 이루어지는 동일한 유형의 우연한 사고 발생 위험에 대비하여 공동의 재산을 비축하고 사고 발생 시 공동 재산에서 일정액의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 생명보험회사와 체신보험은 금융기관의 보험기관에 해당한다. 생명보험회사가 금융기관으로 분류되는 것은 손해보험과는 상이하게 손해의 발생 여부에 관계없이 기간이 경과된 후 약정된 보험금을 지급하는 저축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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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단체. 1995년 분당신도시의 형성과 함께 자치와 통일시대를 지향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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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생활 안정 및 교육, 직업, 의료 등의 보장을 포함하는 복지를 추구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사회복지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소산인 사회제도의 하나이며, 생활문제의 예방과 해결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사회보장을 그 주요한 구성 부분으로 하고 있는데, 그밖에 성립 사정과 사회적 기능 등에서 사회보장과 일부 또는 전부가 공통되는 여러 제도도 포함되어 있다. 좁은 뜻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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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하고, 저축을 증대하기 위하여 설립된 제2 금융 기관. 1972년 8월 2일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 명령에 따라 사 금융을 양성화하려는 목적으로 상호신용금고법이 제정되면서 상호신용금고가 탄생하였다. 상호신용금고법은 당시 제도 금융권 밖에서 무질서하게 방치되어 있던 무진 회사, 서민 금고, 사채 및 계 등의 사 금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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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금융기관으로 회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향상과 지역 사회 개발을 위하여 설립된 비영리법인. 새마을금고는 1963년 재건국민운동중앙회의 역점 사업의 일환으로 경남 지역에서 새마을금고법에 따라 시행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 1977년에는 전국적으로 42,436개소의 새마을금고가 조직되었으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다. 1990년을 기준으로 전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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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원으로 활약하며 항일 의식을 심어준 문화운동가 석재홍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500번지이며, 1934년경 서울 훈정동(薰井洞)에 거주하였다. 훈정동에 거주하며 양복의 원단을 파는 양복지상의 일을 하였는데, 일명 일량(一良)으로도 호칭되었으며 사회주의의 문예 활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1931년부터 이동식 소형극장이라는 결사체를 결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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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의병정신의 실천성에 기초하여 신간회 운동을 전개한 후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을 주도한 운동가 성남지역에서 의병정신의 실천성을 시현하면서 행동한 지성인은 석혜환이라 할 수 있다. 석혜환은 1890년 10월 22일에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서 지주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1938년에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초창기 석혜환은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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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 때부터 열려왔던 성남시의 시장. 전통사회 성남 일대의 상권에 대하여는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근거하여 대략적인 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데, 판교동에서 매월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의 월 6회 개시하는 낙생장이 유일하였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송파장을 나타내는 지도에 따르면, 낙생장은 1, 6일, 성내장은 2,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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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의 경원대학교 진리관 앞에 건립되어 있는 추모비. 송광영은 1958년 10월 3일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하여 1974년 서울 경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인천 등지에서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다가 1982년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1984년 경원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반독재투쟁 등 민주화운동을 위한 학생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던 중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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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관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자는 인숙(仁淑)이다. 부친은 송기회(宋耆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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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있었던 행정기관. 성남시는 1973년 7월 1일에 시로 승격하면서 1실, 10과, 2개 사업소, 2개 출장소, 18개 동사무소를 설치하여 시의 행정 업무를 관장하였다. 수정출장소의 설치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성남시가 전국적으로 규모 면에서 제10위로 급부상한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1991년 12월을 기준으로 수정출장소의 관할 구역은 16동 333통 1,775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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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각자가 민주주의를 기초로 권리의식을 자각하고 계층의 차이를 초월한 연대를 추구하며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운동. 시민운동은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유형이 상이하게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지역생활과 밀착된 주민 형태의 운동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층맨션의 반대운동, 유흥업 건축물의 반대운동 등인데, 이는 지역주민과 직접 관계된 문제이나 그 지역성은 비교적 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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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설립된 신간회의 광주지역 지회. 신간회는 1927년 당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의 대립을 막고 항일투쟁에서 민족단일전선을 펼 목적으로 조직한 민족운동단체이다. 신간회 광주지회는 당시의 광주지역 사회운동을 통합한 후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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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역, 단체, 직장, 종교 등의 유대관계를 근거로 조직된 신용협동기구. 1960년에 시작된 조합원 중심의 서민금융기관으로 조합원의 저축을 통해 자금을 조합원에게 융자해 주는 금융기관이다. 현재 한국의 신용협동기구는 추진주체에 따라 한국신용협동조합연합회 산하의 신용협동조합, 마을금고연합회 산하의 마을금고, 농업협동조합과 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조직인 단위조합과 어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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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이천수창의소 의병진의 우군장으로 활동한 재야유생의 의병. 신용희의 호는 운호(雲湖)이며, 자는 이현(利現)으로 본관은 평산이다. 그에 대한 상세한 자료가 불명확한 관계로 접근하기 어렵지만 대략적으로 족보에 관직의 경력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재야유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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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1975. 정치인. 건국 초 국회의장을 지낸 신익희의 큰아들로 광복군과 정치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1915년 9월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하여 1923년에 어머니와 함께 상해로 아버지 신익희를 찾아갔다. 1941년 중국 상해 광화대학(光華大學) 상과를 졸업하였다. 중일전쟁중인 1941년 중국국민정부감찰원 위임관을 비롯하여 국민정부군의 소교복무원(少校服務員), 중앙은행 과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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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 광복군 제2지대원으로 유격전 등 항일투쟁을 실천한 독립운동가 무장투쟁론을 실천한 염재항은 광주군 중대면 출신이며 1899년 9월 22일에 출생하였다. 다른 이름은 염파(廉波)이며 광복군에 입대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임시 수도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이며 공식 명칭은 한국광복군이다. 1937년 창설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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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팔고 사는 시장. 우시장은 ‘쇠전’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판교 너더리마을에는 일제강점기에도 너더리시장이 있어 인근 주민들이 이용하였다고 한다. 이 너더리시장의 특색은 주막거리 서쪽에 우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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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치장(致長)이고, 부친은 윤한섭(尹漢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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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일반인의 예금을 맡고 그것을 기업, 개인에 대부해주거나 어음할인을 하여 이윤을 얻는 금융기관. 은행은 신용 제도의 중심체로서 화폐 거래와 대부 거래를 일체화시켜 경영하며 신용 통화를 공급하는 금융기관이다. 한국에는 개항 2년 뒤인 1878년 일본의 제일은행(第一銀行)이 부산에 지점을 개설하면서부터 근대적 은행 제도가 도입되었고, 이후 이에 자극을 받아 민족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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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 스스로 일어나 자위군을 조직하여 이에 대항하는 일. 여기서는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일어난 의병의 활동을 말한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시대까지 성남지역을 포괄한 광주지역은 실학의 진원지로 근기학파(近畿學派)의 개조인 성호 이익(李瀷)을 위시하여 안정복(安鼎福), 정약용(丁若鏞) 등이 학문적 토대를 마련한 곳이다. 광주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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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에 참여한 인물.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924번지이다. 그는 1910년에 출생하였으며 일명 이양재(李良載)로도 불렸으며 1936년에는 시흥군 북면 본동리(本洞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27세의 나이로 점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광주공산당협의회 사건으로 일경에 붙잡혀 수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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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192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제를 구축하고 경찰관서 폭파사건으로 체포되어 옥사한 독립운동가. 1895년 6월 광주에서 출생하였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이규상(李揆尙), 이규송(李揆松)으로 불리었다. 1910년 일제 강점으로 인해 부친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안도현(安圖縣)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면서부터 투쟁을 본격화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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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우문(又文). 호는 몽학(夢鶴). 조선 세종의 다섯 째 왕자인 광평 대군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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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철종 11)~1921년. 제국주의 침탈의 위험성을 직시하여 국권침탈조약 반대운동을 전개한 인물. 1860년 10월에 광주군(廣州郡) 대왕면(大旺面) 자곡리(紫谷里)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일본 특파대사 이등박문(伊藤博文)에게 을사조약의 파기를 촉구하는 공한을 보냈다.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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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 일제의 부역과 세금 수탈에 반대하여 대왕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광주군 돌마면 여수리가 본적인 이시종은 1900년 6월 11일에 대왕면 수서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세의 나이로 송파시위에 참가한 후 자극을 받아 대왕면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헌병주재소에 연행된 뒤 일제에 의해 징역 1년형에 처해져 수감생활을 하였으며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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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서 1952년까지 돌마면사무소 면장을 역임한 인물 1906년에 돌마면은 여수동, 하탑리, 상탑리, 이매동, 분당리, 수내촌 등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이매리에 돌마면사무소가 신축하였고 이갑규에 이어 1930년에는 이택규가 돌마면장에 임명되어 행정을 관장하였다. 1930년대 면장은 관제 자치기구를 육성하여 매판적 동맹자를 구축하는 한편 혁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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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 일제의 부역과 세금 수탈에 반대하여 대왕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본적은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이다. 대왕면 수서리에 거주하며 1919년 32세에 대왕면의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헌병주재소에 연행되었다. 일제에 의해 징역 8월형에 처해져 수감 생활을 하였으며 1920년 4월 28일에 만기 출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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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남경군관학교 입교생 모집 활동으로 인해 종로경찰서에 검거된 독립운동가. 본적은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이며 서울 익선동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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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이매리에 신축한 돌마면사무소 면장을 역임한 인물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따르면 돌마면은 상동리와 하동리의 2개 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1846년에 돌마면의 경우 총호수가 460호이며 남자가 1,140명이고 여자가 1,224명으로 나타난다. 1906년에 돌마면은 여수동, 하탑리, 상탑리, 이매동, 분당리, 수내촌 등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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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 자는 은교(殷敎)이다. 아버지는 임규렴(林圭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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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건석(建錫)이다. 아버지는 임용조(林容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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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영옥(榮玉)이고, 아버지는 임용조(林容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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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춘엽(春燁)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예조참판에 주층된 임용만(林容晩)이고,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된 임면근(林勉根), 증조할아버지는 임종한(林宗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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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춘실(春實)이며,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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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학유(學維)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추증된 임계선(林啓善)이고 할아버지는 임규렴(林圭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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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인보(仁甫)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추증된 임규현(林圭顯)이고, 할아버지는 가선대부 예조참판에 추증된 임용만(林容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에 추증된 임면근(林勉根)이고, 고조할아버지는 임종한(林宗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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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아버지는 통덕랑 임규태(林圭台), 할아버지는 통정대부 행돈녕부도정을 지낸 임용선(林容宣), 증조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옥천현감을 지낸 임철근(林澈根), 고조할아버지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임건한(林建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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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계재(季載)이다. 부친은 가선대부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임규정(林圭貞)이고, 할아버지는 임용조(林容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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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고종 30)~1968년. 중대면 3.1만세운동에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작성 배포한 인물. 1893년 5월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한 후 1919년 28세 때에는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에 거주하였고 농업에 종사했다. 김준현과 함께 중대면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중대면의 경우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가 있어 타지역과 비교해 보면 경계가 엄중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장덕균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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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거주한 음악가. 한석(閑石) 정세문은 1923년 3월 25일 황해도 봉산군 사인면 계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춘천사범대학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한 후 춘천초등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로 있었다. 이후 서울대 음악대학과 건국대 사범대 음대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음악교육학회 회장, 동요작곡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일평생 동안 동요에 심취하여 작곡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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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세포 조직인 광주공산당협의회를 조직, 결성한 인물. 일명 영린(永潾)으로도 호칭되었다. 정영배의 본적 및 거주지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138번지이고, 1912년 8월 29일에 출생하였다. 남한산노동공제회에 가입한 후 석혜환의 지도 아래 좌익서적을 읽고 사회주의에 심취하여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1930년 가을 남한산노동공제회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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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7일 중부면 단대리, 탄리, 수진리 일대 주민이 벌인 만세시위운동. 중부면의 만세시위운동은 남한산성을 중심축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일제하 중부면은 면소재지 산성리를 비롯하여 13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919년 3월 27일 새벽을 기하여 남한산에서 횃불을 밝히고 이를 신호로 하여 단대리, 탄리, 수진리의 주민 300여명이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들은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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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있었던 행정기관. 성남시는 1973년 7월 1일에 시로 승격하면서 1실, 10과, 2개 사업소, 2개 출장소, 18개 동사무소를 설치하여 시의 행정 업무를 관장하였다. 중원출장소의 설치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해 성남시가 전국적으로 규모 면에서 제10위로 급부상한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관할 지역은 10개동, 269통, 1,612반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7개과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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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상의 권리, 의무 등을 나타내는 문서. 증권은 재산상의 권리를 표시하는 유가증권(有價證券)과 특정 권리관계의 존재 및 내용을 표시하는 증거증권(證據證券)으로 나눌 수 있다. 유가증권에는 물재증권(物財證券), 통화증권(通貨證券), 자본증권(資本證券)이 있고, 증거증권에는 차금증서, 영수증 등이 있다. 증권은 일반적으로 유가증권, 특히 자본증권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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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고종 11)~?. 광주군 중대면 송파진헌병주재소 앞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 천중선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이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일명 중선(仲善)으로도 지칭되었다. 1919년 46세 때 송파진헌병주재소에서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한 결과 1년 징역형에 처해져 수감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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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중국군관비행학교 관비생을 모집하는 점조직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도능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이다. 그는 남한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세브란스 치과의원 기공실 견습생으로 있었다. 1934년 10월부터 1935년 1월 경까지 천진에 거주한 후 귀국하여 약방의 점원으로 있었다. 1930년대 국내의 독립운동이 잠재된 형태로 전개되는 시기에 점조직원으로 활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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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성남 지역 출신의, 조선프로레타리아 예술동맹원으로 활약한 항일 문화운동가. 추완호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209번지이며 서울 숭사동(崇四洞)에 거주하였다. 일명 적양(赤陽)으로 호칭되었으며 1934년 이전에는 조선일일신문 사원으로 근무하였다. 1931년부터 이동식 소형극장의 미술장치부원으로 활동하다 1934년 8월에 체포되어 옥고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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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투자신탁의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투자가의 자금을 모아 하나의 기금으로 만들고, 이 기금을 전문관리자가 증권투자를 중심으로 운영이식을 도모하고 이 결과 얻어진 이익은 출자구수(出資口數)에 따라 투자가에게 배분된다. 물론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투자가의 부담이 되므로 일정한 이익이나 원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손실 발생의 위험을 분산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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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헌병경찰제하에서 낙생, 돌마, 중부출장소 관내를 관할한 판교지역 헌병분견소. 일제는 한반도에 배치한 군대를 더욱 늘리면서 전국 각처를 헌병과 경찰에 의한 계엄통치 상태에 두었다. 조선총독은 사법, 행정, 입법을 비롯하여 군대 지휘권까지 장악,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 아래에는 정무총감과 경무총감을 두었는데 경무총감은 헌병사령관이 겸임하였다. 1910년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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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헌병경찰제하에서 판교 지역민을 탄압하기 위해 설치한 순사주재소. 대한제국은 1907년 7월 27일 개혁을 단행하여 순검(巡檢)을 순사라 하였고, 경무서(警務署)는 경찰서로, 분서와 파출소는 순사주재소로 개칭하였다. 한성부를 포함한 경기도 관할 구역 내에 8개의 경찰서와 4개의 분서(分署), 40개의 순사주재소를 설치하였다. 우선 한성부 내에 중부경찰서, 동부경찰서,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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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주민들이 부당한 판교 톨게이트 징수료의 반환을 요구한 민원.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주민들이 경부고속도로 판교 톨게이트를 거쳐 서울요금소를 지날 때 이용하지도 않은 판교IC~양재IC 구간(9.1㎞)의 요금 1천 1백원을 부당하게 더 내고 있다며 이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대두되었다. 분당 주민들이 경부고속도로 판교 남쪽 구간을 이용할 때 서울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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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한순회의 장남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월북한 인물. 한백건은 한순회의 장남으로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순회가 일제시대 천도교에 전념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역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장남 한백건을 비롯한 네 형제들이 3.1운동과 신간회 광주지회의 지회장으로 활동한 부친의 감화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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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고종 18)~1950년. 돌마면 만세시위를 주도한 후 민족협동전선 운동인 신간회 지회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한백봉은 1881년(고종 18)에 한란의 29세 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성의(聖儀), 호는 송헌(松軒)이며 본관은 청주이다. 1919년 당시 39세로 광주군 돌마면 율리에 거주하였으며 생업은 농사였다. 돌마면의 유지로 활동하며 3.1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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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 북경 동서동 직문대로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한 인물. 한영복은 1867년에 출생하였으며 거주지는 광주군 돌마면 분당리 44번지로 나타난다. 성장 과정은 정확하게 추적하기 어렵지만 1914년에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영복의 호는 유농(有農) 또는 남농(南農)으로 불리었으며 일명 세량(世良)으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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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내무부에 근무하다 성남시청의 제3대 시장으로 취임한 인물. 홍석표는 1976년 7월에 내무부에 근무하다가 성남시청의 제3대 시장으로 취임하였다. 1977년 7월 19일에 강원도 기획관리실장으로 이임하여 성남시장으로 재직한 것은 1년 정도에 해당한다. 성남시에 재임하면서 문화 복지의 도시 건설을 시정 방침으로 정하여 업무를 추진하였다. 세부적인 추진 사업은 총력안보 강화,...